김정은

"천안함은 두 번째 집, 전우들은 두 번째 가족… 폭침날에 생일 쇱니다"

최만섭 2017. 3. 27. 06:13

"천안함은 두 번째 집, 전우들은 두 번째 가족… 폭침날에 생일 쇱니다"

입력 : 2017.03.27 03:03

[천안함 7주기] 천안함 폭침 생존자 김윤일씨

"가장 바람직한 복수는 굳건히 뭉치는 모습 보여주는 것…
생존자를 패잔병으로 보는 시선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생존자인 예비역 병장 김윤일씨가 26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7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생존자인 예비역 병장 김윤일씨가 26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7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26일 경기도 평택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7주기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서 만난 '천안함 생존자' 김윤일(29)씨는 "가장 바람직한 복수는 적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간 자와 남은 자들이 하나같이 나라의 환대를 받으며 굳건히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7년간 폭침 후유증, 생존자에 대한 편견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결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는 "아까 46용사의 영전에 헌화하는 순서에서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참았다"며 "해마다 3월이면 먼저 간 46명 전우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고 했다. 7년 전 참사가 자꾸 떠오르는 듯 인터뷰 도중 김씨의 얼굴은 계속 일그러졌고, 말도 자주 끊겼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당시 레이더를 감시하는 전탐병(상병)이던 김씨는 전투상황실에서 레이더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폭음과 함께 몸이 위로 떴고, 몇 초 동안 정신을 잃었다. 구조선으로 옮겨진 그는 "살아남은 전우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배에서 올라와 내 곁으로 올 때, 전사자들을 태운 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공포에 떨었다"며 "TV에서 전사자들의 신원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제발 저들이 고통 없이 즉사했기만을 바랐다"고 했다.

김씨는 사건 이후 10개월 동안 제주방어사령부에서 나머지 군 생활을 보냈다. 그는 "군 복무 기간 전우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에 대한 복수를 꿈꿨다"며 "한 차례라도 저 잔인무도한 적(북한)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했다. 2011년 1월 전역한 김씨는 동국대 사학과에 복학해 2014년 졸업했다.

천안함 7주기… 헌화하는 유가족 - 천안함 폭침 사건에 희생된 고(故) 이상민 하사 유가족이 26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를 하고 있다. 해군 2함대 사령관 부석종 소장은 이날 추모사에서 “적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서린 전우들의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이 애절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당시 천안함 승조원, 천안함 재단과 국가보훈처 관계자, 미(美) 육군 2사단과 해군 15전대 소속 장병 등이 참석했다.
천안함 7주기… 헌화하는 유가족 - 천안함 폭침 사건에 희생된 고(故) 이상민 하사 유가족이 26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를 하고 있다. 해군 2함대 사령관 부석종 소장은 이날 추모사에서 “적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서린 전우들의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이 애절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당시 천안함 승조원, 천안함 재단과 국가보훈처 관계자, 미(美) 육군 2사단과 해군 15전대 소속 장병 등이 참석했다. /오종찬 기자

전역 이후 김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천안함 생존자들을 '패잔병'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일부에서는 '경계에 실패한 군인' 운운하며 전사한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을 폄하하려 했고, 우리의 주적에게 폭침 혐의가 집중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논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천안함 생존 장병들에 대한 무관심과 어떤 대책도 제공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나라를 지키다 적의 공격으로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겪어야 했던 자들을 국가가 외면한다면 그 누가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겠느냐"고 했다.

회사에 취직했다가 최근 퇴사해 쉬고 있다는 김씨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3월 26일에 생일을 쇤다"고 했다. 1년간 탑승했던 천안함은 그에게 '두 번째 집'이고 전우들은 '두 번째 가족'이라고 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천우회(천안함 전우회)'를 만들어 활동하며 현충일이나 경조사 때 모여 정(情)과 기억을 나눈다고 한다.

김씨는 올해도 천안함 추모 행사 하루 전인 25일 평택에 내려가 전우들을 만났다. 그는 "전우들을 만나 천안함 폭침 상황 당시 얘기를 나누는데, 사건 당시 모두 다른 위치에 있었기 때문 에 매번 들어도 새롭다"고 했다. 김씨는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가운데 제가 몸이 양호한 편"이라며 "부상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전우들도 있고, 그날의 기억 자체를 떠올리기 싫어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전우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천안함 46용사들의 위훈을 기리고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보훈 관련 일을 하려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7/20170327002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