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2016·12·9 표결

[사설] 분열 대립 멈추고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최만섭 2017. 3. 11. 07:21

[사설] 분열 대립 멈추고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입력 : 2017.03.11 03:15

'8명 전원 일치' 판결은 논란 끝내야 한다는 뜻
촛불도 태극기도 모두 愛國心, 이제 日常으로
제왕적 대통령制도 탄핵된 것, 분권改憲이 갈 길
대선 주자들 갈등 조장 말고 국가현실 직시하라

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법 절차에 따라 파면되는 첫 대통령이 됐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후유증이 없어야 하나 그렇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헌재는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결정을 내렸다. 이정미 소장권한대행은 결정문에서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했다. 소수의견 없이 이 판단에 8명 모두가 동의했다. 일부 쟁점에 대한 보충 의견만 첨부됐다. 전원일치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파면 결정에 헌법적·법률적 이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으로 모든 논란의 종지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함께 774억원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용을 주도했다고 보았다.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했다. 예상대로 결국 이 문제가 결정적 탄핵 사유가 됐다. 헌재는 "(이런) 위헌·위법 행위가 재임기간 중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최순실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긴 점' '언론의 의혹 제기를 오히려 비난한 점'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한 점' 등을 들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헌재가 다른 상당 부분의 탄핵 소추 내용을 배척한 것은 모두 유념해야 한다. 헌재는 '세월호 7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탄핵 심판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 발생과 대통령의 당일 직무 수행은 직접 연관이 없는 것으로 이미 밝혀져 있다. 다만 대통령이 그래도 최선을 다했느냐는 도덕적 논란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회 일각은 7시간에 대한 온갖 거짓을 만들어냈고 국회는 이 내용을 탄핵소추안에 포함시키는 상식 밖의 행태를 보였다. 인터넷 상에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이 난무했다. 야당이라고 해서 이것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 배설에 가까운 인터넷 댓글에 떠밀려다녔다고 볼 수밖에 없다.

헌재 결정은 끝났다. 비록 갈등은 컸으나 우리가 법 절차에 따라 난제를 매듭지었다는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극에 달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 탄핵 찬·반 두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끝내 분단으로 귀결된 해방 직후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일 탄핵 반대 시위자 2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촛불 시위건 태극기 시위건 일부 극렬세력을 빼고는 모두가 나라를 위한다는 충정(忠情)이었다. 특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커다란 좌절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들 대다수는 맹목적인 개인 추종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촛불시위대의 사드 반대나 통진당 이석기 석방 주장이 이어지면서 태극기 집회가 점점 커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탄핵 찬성 측이 축제를 열어 안보를 우려하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다. 탄핵에 반대한 사람들의 충심을 폄훼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탄핵 찬성 측의 '승복'이다. 11일 촛불 축하 집회부터 중단해야 하고 대선주자들은 모든 집회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제발 며칠만이라도 정치 소인배들이 아니라 사려깊은 정치가가 돼 달라.

권성동 국회 측 소추위원장은 "탄핵은 모두의 승리이자 모두의 패배"라고 했다. 대통령 파면이 '모두의 패배'인 것은 이 국가적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 때 미국 닉슨 대통령의 예와 같은 정치적 출구를 찾지 못했다. 대통령을 포함해 어느 정치인 하나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결국 파면이란 전례를 만들었다. 이 선례를 차기, 차차기 정부에서 재연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타협을 경원시하고 끝을 보고야 마는 우리 사회 풍토가 이대로인 한 모두가 패자가 되는 불행한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헌재 안창호 재판관은 파면 결정 '보충의견'에서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協治)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 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에 탄핵당한 것은 대통령 한 사람만이 아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공직사회에 법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고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낡은 권력 풍토, 그런 권한을 남용하는 대통령의 잘못된 권력 인식, 불과 몇 %를 더 득표했을 뿐이나 100%의 권력을 휘두르는 승자독식 정치, 그로 인해 죽기살기식 진영 싸움이 구조화된 정치 체제 모두가 탄핵된 것이다. 이 권력 체제를 그대로 두고 보다 나은 정치, 국민을 돕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실한 심정을 탄핵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재판관이 토로했다. 그 깊은 뜻을 모두가 새겨야 한다. 안 재판관만이 아니라 모든 재판관의 심정이 같을 것이다.

이제 수명이 다한 1987년 헌법을 권력 분산과 지방자치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새 헌법으로 바꾸는 것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이 또 자신의 권력 행사를 위해 개헌을 무산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모든 대선 주자가 개헌을 약속한 상태다. 이번마저 그것이 속임수로 드러나면 국민이 정치적 탄핵을 해야 한다.

이제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가 시행된다. 투표일로 5월 9일이 거론되고 있다 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조기(早期) 대선이다. 비상 선거인만큼 이전의 대선과는 달라야 한다. 지난 석 달간 '심리적 내전'으로까지 불린 갈등 속에서 우리 국민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대선이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탄핵 갈등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면 해악은 예상을 넘을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지지율 조사에서 앞선다는 야당 후보들부터 촛불 시위를 선동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최우선으로 삼는 자세 전환을 해야 한다. 탄핵 반대 국민도 존중하면서 '촛불 대통령'이 아니라 '100%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럴 생각이 없으면 대선이 아니라 시민단체로 가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탄핵 결정 직후 우리 사회 갈등의 한 단면처럼 된 세월호 팽목항을 찾은 것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는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이었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탄핵시켜줘 고맙다는 뜻인가. 뜻하지 않은 불행을 당한 어린 학생들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이 할 일이 아니다. 통합으로 가야 하는 이 시점에는 더욱 그렇다.

다음 정부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단독으로는 국정을 이끄는 것 자체가 어렵다. 국회 선진화법을 넘어설 180석은 물론 과반 정당도 없다. 국회는 30석을 넘는 정당만 4개다. 연정(聯政)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선동하다 대통령이 되면 조각(組閣) 등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에도 믿고 맡길 만한 대통령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야권에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선두에 있고 보수 진영은 완전히 지리멸렬해 있다. 많은 국민의 선택권이 사실상 박탈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야권 대선 주자들은 자중(自重)하고 보수 정치인들은 스스로에게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광장의 격돌이 가열된 지난 몇 달간 나라 밖에선 전에 보지 못한 불길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미국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통령이 취임했다. 과거에 보지 못한 대북(對北)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미 통상 분야에서도 새로운 틀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은 사드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 보복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북 김정은은 이복형을 암살하고 미사일 도발을 거듭했다. 일본은 대사를 소환한 채 일언반구 없다. 경제는 성장 중단과 내수 침체, 가계부채 등의 위험 요인이 커지고 있다.

탄핵 사태는 끝났다. 이제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정말 중대한 국가 현안들과 마주해야 한다. 안보·경제 동시 위기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여러 면에서 나라가 하락세에 있다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한 정치인이 인용한 고전(古典)처럼 나라는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나와 우리 편이 아니라 나라를 먼저 생각할 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0/20170310029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