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2016·12·9 표결

탄핵 不和… 예비 처가와 상견례도 미뤘다

최만섭 2017. 3. 7. 06:41

탄핵 不和… 예비 처가와 상견례도 미뤘다

입력 : 2017.03.07 03:03

[정치가 뭐라고… 가족·친구·연인 사이도 갈라놔]

밥 먹다가 남매끼리 멱살잡이, 집회참가 놓고 부녀·모자간 언쟁
탄핵 반대하면 '수구 꼴통' 매도
'꼰대' 취급 당할까봐, 찍힐까봐… 직장선 상사·부하직원 입조심

탄핵에 대한 연령대별 찬성, 반대 비율 그래프

일요일인 지난 5일 오후 9시쯤, 서울 광진구의 한 가정집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모처럼 모인 가족 저녁 식사에서 대통령 탄핵 찬반을 두고 말싸움을 하던 남매가 서로 멱살을 잡다가 식탁 위 식기들을 떨어트린 것이다.

누나 조모(51·회사원)씨는 전날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남동생(49)이 이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집안 망신이다"라고 한 게 싸움의 발단이었다. 조씨가 "북한이 도발을 하는 시국에 촛불을 드는 네가 더 부끄럽다"고 반박하면서 서로 고성이 오갔다. 결국 한 시간 만에 동생이 "가족의 연을 끊자"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말리던 가족들은 "정치가 뭐라고 가족끼리 양보도 못 하냐"며 혀를 찼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가족과 친구, 연인처럼 친밀했던 사람들이 탄핵 찬반(贊反)으로 갈려 갈등을 빚는 '탄핵 불화(不和)'가 늘어나고 있다. 탄핵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정(情)으로 뭉친 '1차 집단'까지 갈라놓는 것이다.

오는 6월 결혼식 날짜를 잡은 회사원 노모(28)씨는 원래 3월 초에 하기로 했던 양가(兩家) 상견례를 미뤘다. 가족이 전부 탄핵을 지지하는 노씨 집안과 달리 예비 신부 집안은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씨는 "축복과 덕담이 오가야 하는 자리가 정치 얘기로 다툼의 장이 될까 봐 일단 피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토요일마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려고 멀리 대구에서 상경(上京)하는 장인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탄핵 불화'는 세대 갈등의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대별로 탄핵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과 지난 2일 한국갤럽이 19세 이상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탄핵 여론조사를 한 결과, 20~40대는 90% 이상이 '찬성'이었지만, 60대 이상은 찬성하는 비율이 50%에 그쳤다.

특히 부모와 자녀 간의 불화가 두드러진다. 매주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는 서모(56)씨는 "집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면 거의 자동으로 20대 딸과 싸우게 된다"며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떠나 딸의 생각을 듣고 싶은 건데, 탄핵에 반대하면 무조건 '수구 꼴통'이라고 매도해 서운하다"고 했다. 대학생 권모(26)씨는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에 함께 나가자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예 엄마랑 대화를 안 하고 산다"고 했다.

탄핵 때문에 가까운 친구 간에 의가 상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원 심모(34)씨는 최근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서 "탄핵을 하면 나라만 시끄럽지 좋을 게 뭐가 있나"라는 말을 했다가 친구 4명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심씨는 "15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무식한 놈' 취급해서 상처받았다"며 "단톡방을 탈퇴했고, 당분간 동창들과 연락도 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동호회원 권모(29)씨는 "연습 후 회식자리에서 탄핵 찬반을 두고 격렬한 말싸움이 일어난 뒤 동호회 안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말자는 '금지령'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 직원이 서로 눈치를 본다. 대기업 부장 허모(50)씨는 "탄핵 반대 입장이지만, 젊은 팀원들과 회식 자리에서는 분위기 험악해질까봐 일부러 탄핵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며 "부하 직원들에게 '꼰대' 취급을 받기 싫다"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26)씨는 "회사 임원으로부터 '청년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너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난감했다"며 "탄핵에 찬성하지만, 탄핵에 반대하는 상사들에게 찍힐까봐 회사에서는 아무런 얘기를 안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쪽이든 탄핵 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갈등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불화가 고착화되지 않도록 찬반 양측이 다양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7/20170307002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