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7 03:17
북한, 美는 물론 中에도 골칫거리… 그렇지만 北 核시설 공격은 위험해
대신 북한 정권 교체 추진하자김 정은이 형 암살로 선수친 듯
당장은 효과 봤다고 생각하겠지만 역사적 반전의 결정적 계기 될 수도
역사상 정적 암살은 빈번했다. 스탈린의 명령으로 멕시코에 망명 중인 트로츠키가 암살된 사건(1940)이 대표적인 예이다. 스탈린은 타고나기를 잔인한 "피에 굶주린 살인마(후계자였던 흐루쇼프의 평가)"였다. 북한 역사에서도 무자비한 주민 탄압과 정적 살해·암살은 일상사였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타고난 살인마가 아니었다. 공산 체제 자체가 그들을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게 더 적확한 설명이리라. 왕조적 족벌 체제이기도 한 북한에서 가장 힘센 집안은 물론 김씨 가문이며 그다음 서열이 김일성의 외가인 칠골 강(康)씨 가문이다. 김일성가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오죽하면 모친 이름이 강반석(盤石)이었을까. 모태 신앙인 김일성은 공산주의라는 다른 '종교'로 개종했지만 자신의 기독교적 배경을 숨기지 않았다. 1946년 2월에 출범한 사실상 북한 정부인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강양욱은 김일성의 외종조부로 일제시대 도의원을 지낸 목사였다.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강명도 교수는 북한 최상류층 출신 탈북자로 바로 강양욱의 손자이자 김일성의 친척이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북한사에서도 이 두 집안은 비교적 안전한 위치를 보장받았다. 김일성 피를 가진 소위 '백두 혈통'은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존재했다. 일제시대 일본 헌병 보조원을 지낸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는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다. 그런데 김정일과 벌인 권력투쟁에서 패하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아직도 96세로 생존하고 있다. 김정일이 몹시 증오한 인물 중 하나는 이복동생 김평일이었다. 작고 뚱뚱하고 수줍은 정일과 달리 평일은 잘생기고 운동도 잘했고 호방한 성격이어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일성가의 가정교사로 지근거리에서 이 집안을 볼 수 있었던 김현식 교수는 탈북 후 회고에서 순진한 소년이었던 김정일이 폭군이 된 이유 중 하나가 김평일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까지 평가한다. 그런데도 김평일은 비록 끊임없는 감시를 받으며 외국을 전전하고 있지만 죽지 않고 현재 체코 대사로 재직 중이다. 김정은 정권 초기 2인자였던 장성택은 처참하게 처형됐다. 김정은의 고모부지만 '백두 혈통'이 아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번 김정남 피살은 이런 '백두 혈통 보존 법칙'을 깬 점에서 이례적이고 왜 이 시점에 이런 무리수를 저질렀는지 살펴봐야 할 사안이다.
김정은으로선 자기 목줄을 쥔 중국과 친해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장성택과 김정남을 제거하면서 중국의 대안 카드를 없앴다는 점에서 일정 성과를 거뒀다. 이 사건으로 우왕좌왕 당황하는 중국 모습을 보면 그의 도박이 성공한 듯도 하다. 그러나 당장 큰 위협이 아닌 이복형 김정남을 무리하게 죽인 데서 김정은의 초조함도 읽을 수 있다. 한반도의 궁극적 지향점은 북한의 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일 것이다. 북한을 한국처럼 자유롭고 풍요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통합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단기에 이루기는 어렵다. 대신 북한의 체제 교체(또는 정권 교체·regime change)라는 단기 목적을 위해 여러 나라가 힘을 모아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다른 사회라면 최고 지도자의 대안이 될 사람이 많겠지만 공산 왕조 체제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북한에서는 '백두 혈통'이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 백두 혈통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독재자는 공포와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수단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이어받은 방식이다. 그러나 노회한 아버지에 비해 김정은은 이 방법을 노련함을 결여한 채 매우 거칠게 적용하고 있다. 중국과 친분이 없는 그의 공포정치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고, 자신의 명을 재촉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