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5 03:04
최순실씨에게 당하고도 촛불 아닌 태극기 택한 체육인 정동구씨 마음엔
개인을 향한 분노보다 나라에 대한 걱정 가득
그게 영하의 거리 종횡하는 '태극기 물결'의 실체다
'격동의 시대에 격조했습니다. 한번 만나 대포 한잔. 오후에 대한문 앞으로 갑니다.' 2월 18일 토요일 이런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확인해보니 정동구(鄭東求) 선생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 출전한 양정모가 광복 후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겨줬을 때 그는 대표팀 코치였다.
2016년, 평생을 스포츠에 바친 이 체육계 대부(代父)에게 흉몽(凶夢)이 시작됐다. 최순실은 그를 K스포츠의 '바지 이사장'으로 앉혔다. 월급 없이 감투만 주고 기업에서 뜯어낸 재단 돈 수백억원을 제 지갑으로 옮기려 했다. 더블루K가 쓴 부실 문서 2건의 용역비 7억원을 청구한 게 첫 시도였다.
이 물꼬가 순조롭게 트였다면 K스포츠 기금은 지금쯤 독일로 모두 옮겨져 영영 회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흑심에 제동을 건 이가 정 선생이다. 약이 오른 최순실은 그를 내쫓았다. 정 선생은 이후 검찰에 불려다녔다. 손자뻘 기자들의 밤낮없는 전화 세례에 몇 달을 시달려야 했다.
정 선생은 자신을 악용한 최순실과 그런 최순실을 감싼 대통령에게 분노를 느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정 선생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나는 그가 "개인은 희생돼도 나라가 이 지경이 돼선 안 된다"고 결심했다고 믿는다. 이게 엄동설한에 아스팔트를 달구는 '태극기 물결'의 실체다.
이 사태 초기 정 선생은 하소연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젊은 기자들하곤 얘기가 안 될 것 같아 전화했어. 집이고 교회고 찾아와서…." 정 선생의 부인은 치매를 앓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그가 태극기를 쥔 채 꽁꽁 언 노구(老軀)를 녹이려 그 텅 빈 집에 들어서는 모습을 나는 상상해본다.
'돈 받고 집회에 나온다'거나 '틀니가 딱딱거린다'는 뜻의 '틀딱'으로 비하되지만 이는 현장에 안 가본 이들의 선입관이다. 태극기 든 이들은 6·25 때 총을 들던 심정으로, 월남의 밀림이나 독일 탄광 갱도 속이나 중동 모래바람을 이겨내던 시절의 자세로 영하(零下)의 거리를 종횡하고 있다.
탄핵 열차의 충돌이 임박했다. 어떤 결정이든 '혁명' 세력과 '아스팔트를 피[血]로 물들이겠다'는 세력은 수긍하지 않을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결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헌재 결정은 수용해야 하지만 다음 몇 가지 조건이 명확해진다면 후유증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첫째 이 사태가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에 해당하며 국회가 탄핵소추안에 제시한 다섯 가지 헌법 위배 유형에 저촉되는가이다. 법은 죄를 처벌할 뿐 무능을 단죄하지는 않는다.
둘째 검찰이 2000시간 넘는 '김수현 녹음 파일'의 존재를 안 것은 작년 11월 초이며 이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달 초다. 이 '판도라의 상자'를 누가 석 달간 은폐했는가. 모처럼 열린 뚜껑을 닫는 게 공정한가?
셋째 허위-왜곡-편파 보도로 일관한 언론 가운데 잘못을 시인하고 자성(自省)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언론은 이번 사태에 심판 아닌 선수로 뛰어들었다 . 양측의 충돌을 막아야 할 언론이 중립성을 상실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켰다.
넷째 여야 정당과 대권 후보들이 먼저 승복을 선언해야 한다.
다섯째 '의로운 내부자'를 자처해온 고영태 일당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죄가 있다면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조건에 의문이 남는 한 태극기는 계속 펄럭일 것이며 촛불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2016년, 평생을 스포츠에 바친 이 체육계 대부(代父)에게 흉몽(凶夢)이 시작됐다. 최순실은 그를 K스포츠의 '바지 이사장'으로 앉혔다. 월급 없이 감투만 주고 기업에서 뜯어낸 재단 돈 수백억원을 제 지갑으로 옮기려 했다. 더블루K가 쓴 부실 문서 2건의 용역비 7억원을 청구한 게 첫 시도였다.
이 물꼬가 순조롭게 트였다면 K스포츠 기금은 지금쯤 독일로 모두 옮겨져 영영 회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흑심에 제동을 건 이가 정 선생이다. 약이 오른 최순실은 그를 내쫓았다. 정 선생은 이후 검찰에 불려다녔다. 손자뻘 기자들의 밤낮없는 전화 세례에 몇 달을 시달려야 했다.
정 선생은 자신을 악용한 최순실과 그런 최순실을 감싼 대통령에게 분노를 느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정 선생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었다. 나는 그가 "개인은 희생돼도 나라가 이 지경이 돼선 안 된다"고 결심했다고 믿는다. 이게 엄동설한에 아스팔트를 달구는 '태극기 물결'의 실체다.
이 사태 초기 정 선생은 하소연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젊은 기자들하곤 얘기가 안 될 것 같아 전화했어. 집이고 교회고 찾아와서…." 정 선생의 부인은 치매를 앓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그가 태극기를 쥔 채 꽁꽁 언 노구(老軀)를 녹이려 그 텅 빈 집에 들어서는 모습을 나는 상상해본다.
'돈 받고 집회에 나온다'거나 '틀니가 딱딱거린다'는 뜻의 '틀딱'으로 비하되지만 이는 현장에 안 가본 이들의 선입관이다. 태극기 든 이들은 6·25 때 총을 들던 심정으로, 월남의 밀림이나 독일 탄광 갱도 속이나 중동 모래바람을 이겨내던 시절의 자세로 영하(零下)의 거리를 종횡하고 있다.
탄핵 열차의 충돌이 임박했다. 어떤 결정이든 '혁명' 세력과 '아스팔트를 피[血]로 물들이겠다'는 세력은 수긍하지 않을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결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헌재 결정은 수용해야 하지만 다음 몇 가지 조건이 명확해진다면 후유증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첫째 이 사태가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에 해당하며 국회가 탄핵소추안에 제시한 다섯 가지 헌법 위배 유형에 저촉되는가이다. 법은 죄를 처벌할 뿐 무능을 단죄하지는 않는다.
둘째 검찰이 2000시간 넘는 '김수현 녹음 파일'의 존재를 안 것은 작년 11월 초이며 이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달 초다. 이 '판도라의 상자'를 누가 석 달간 은폐했는가. 모처럼 열린 뚜껑을 닫는 게 공정한가?
셋째 허위-왜곡-편파 보도로 일관한 언론 가운데 잘못을 시인하고 자성(自省)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언론은 이번 사태에 심판 아닌 선수로 뛰어들었다
넷째 여야 정당과 대권 후보들이 먼저 승복을 선언해야 한다.
다섯째 '의로운 내부자'를 자처해온 고영태 일당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죄가 있다면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조건에 의문이 남는 한 태극기는 계속 펄럭일 것이며 촛불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