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태평로] 士農工商의 나라

최만섭 2017. 2. 10. 09:13

[태평로] 士農工商의 나라

입력 : 2017.02.10 03:15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인천국제공항 1층 양쪽 끝에 귀빈 주차장(VIP 주차장)이 있다. 고용과 수출 분야 우수 기업인 2000여명도 이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기업인들에겐 작은 편의였지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1년여 전부터 그 혜택이 없어졌다. 경남도지사에 나섰다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정치인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와서는 없앴다. 그는 총선이 가까워지자 임기 도중 사임하고 출마했다. 이제 그 주차장을 계속 이용하는 VIP는 5부 요인,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국립대 총장, 주요 언론사 대표들뿐이다.

왜 기업인을 제외했는지 공항공사 측에 알아보았다.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첫째는 기업인들이 이용하면서 VIP 주차장이 혼잡해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인의 VIP 주차장 이용에 대한 특혜 지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VIP 주차장을 보면 알겠지만 혼잡하다는 것은 핑계다. 기업인들이 이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는 게 더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 주차장을 이용하다가 배제당한 한 기업인은 "'국회의원들은 기업인들이 그 주차장 이용하는 걸 왜 문제 삼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며 "'어디 기업 하는 놈들이 우리와 같이 어울리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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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6일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의 제1차 청문회. /조선일보 DB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국회 청문회와 검찰·특검 수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 기업인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기업인을 여러 명 만났다. 이번 사태는 '국정 농단'이 핵심이지만, 권력 쥔 자들에 의한 '기업 농단'도 큰 줄기를 이룬다. 기업 경영자를 포함해 주요 임원 보직에 "누구를 잘라라. 앉혀라" 지시하고, 계열사 매각까지 좌우하려 들었다. 기업 돈을 쌈짓돈처럼 여겼다.

국회와 특검이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 직원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머리 굴리지 마라" "나이가 50이 안 됐는데 동문서답이 버릇이냐" "서울구치소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다"는 모욕과 협박의 언사를 국회의원들은 너무 쉽게 내뱉었다. 특검은 기업인들을 줄줄이 출국 금지해 놓고 두 달이 지날 동안 단 한 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기업인들을 너무 하찮게,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 회장은 "내 일이 아닌데도 굴욕감을 느꼈다"며 "아무리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수출로 국부(國富)를 늘려도 결국엔 사농공상(士農工商)이고, 관존민비(官尊民卑)구나 싶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단 하나의 일자리도 만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생산해본 적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업(業)으로 삼는 기업인들에게 과도한 권력을 휘두른다. 지금 이 땅에 있는 일자리는 언제든 국경을 넘어가 버릴 수 있다. 그만큼 살벌한 글로
벌 경쟁 시대다. 기업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나라가 번영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사농공상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오히려 강화하는 주장과 대책이 난무한다. 나쁜 기업, 나쁜 기업인 때려잡자고 온갖 새로운 규제를 공언하면서 관료들의 천국을 만들려 하고 있다. 진짜 청산해야 할 적폐는 수백년 묵은 사(士)와 관(官)의 갑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9/20170209034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