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의 결정적 장면이 국민에 의해 기록됐다. 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시켰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는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12년 전 탄핵이 거대 정당 간 정치적 거래의 산물이었다면 이번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탄핵이다. 절대 다수의 국민은 헌법을 파괴한 국정농단 사건의 책임을 물어 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고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는 이를 완수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가결 후 헌법재판소와 청와대에 ‘국회 탄핵소추의결서’를 전달했다. 그 즉시 헌법에 명시된 박 대통령의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 지위에 대한 권한이 중지됐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으며 헌재는 최장 180일간의 심리에 착수했다.
박 대통령 탄핵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 권리를 사실상 행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32만명에 달하는 촛불이 무혈혁명을 이끌어낸 것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로 국가적 위기를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여야 정치권에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선도했다.
朴, 반성하며 특검수사에 성실히 응하라
반면 박 대통령은 국민을 철저히 배신했다. 헌법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 대통령 권한을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지키지 않았다. 일개 사인(私人)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방조하며 헌정질서를 짓밟았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탄핵소추안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 문건을 유출하고 국정에 개입하게 한 혐의 등으로 헌법 제1조가 규정한 국민주권주의를 비롯해 대의민주주의와 헌법수호 및 준수 의무를 위배했다.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은 헌법상 국민의 생명권 보장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는 직권남용과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엄중한 비위 혐의로 탄핵소추를 당한 박 대통령이 헌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국민에게 단죄를 청하는 심정으로 자숙해야 한다. 본인으로 인해 수십 년은 후퇴해 버린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도 되돌아보길 권한다. 특히 검찰 조사를 받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번복한 만큼 특별검사의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어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할 일도 명확하다. 무엇보다 이번 탄핵소추는 무너진 헌정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헌법적 절차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당과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대통령 즉각 하야와 황 총리 및 내각 총사퇴 주장은 정국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 문제는 헌법상의 논란이 있는 데다 자칫 나라 전체가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정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국회와 정부의 정책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 총리는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한데 이어 국정 안정을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 못지않게 근신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의 위기에 몰린 이상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도리다. 더욱이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친박계는 정계를 은퇴하지는 못할망정 차기 권력을 욕심내거나 재기를 노리는 등의 경거망동은 말아야 한다.
야당, 국정 안정과 수습에 앞장서야
탄핵을 가결시킨 정당과 정파들은 이제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민의 분노, 촛불의 함성을 담아낼 국가 시스템 개조에 본격 착수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그 작업이다.
탄핵소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여전히 나라 곳곳에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상존해 있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은 이를 청산하는 한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절호의 기회가 돼야 한다.
[사설] 국민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 바로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압도적으로 가결돼
입력 : 2016-12-09 17:27/수정 : 2016-12-0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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