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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훌륭한 야당'으로 가는 길

최만섭 2016. 12. 6. 06:59

[김대중 칼럼] '훌륭한 야당'으로 가는 길

  • 김대중 고문

입력 : 2016.12.06 03:17

보수는 잘못이 없다… 잘못 선택한 기수가 보수에 먹칠한 것이다
새 기수 뽑고 권토중래하는것,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보수가 할 역할이다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대통령 탄핵 문제로 새누리당이 찬반에 휘말렸던 10여일 전 새누리당의 비박계 중진 의원이 찾아왔다. 한마디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정치는 세(勢) 싸움입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 싸움에서 졌습니다. 대세가 기울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이고 새누리당은 주군(主君) 잘못 만나 정권 내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새누리당에 새누리당을 지키고 나라를 다시 이끌어갈 지도자가 있습니까? 있다면 지금이라도 싸워볼 만합니다. 현 정권이 차려준 공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야단일 정도로 취약한 민주당인 만큼 싸워볼 만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에겐 그런 지도자가 없지 않습니까? 자업자득입니다."

"정권 내주는 것은 그렇다 쳐도 새누리당은 깨지는 것입니까?"

"지금은 새누리가 아무리 엉망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보수를 대변할 정치 집단 아닙니까? 일단 야당이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5년 후 정권을 되찾아올 '훌륭한 야당'이 되는 것이 보수가 살고 새누리가 사는 길입니다."

"지금 당내 싸움을 보면 그런 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면 이른바 친박은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자기들도 살아남으려고 '친박' 하고 있지만 기둥이 무너지면 그만입니다. 그때 다시 당을 추스르는 쪽으로 가야지 지금처럼 당을 깨는 쪽으로 가면서 야당보다 더 원수처럼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전례로 들기 거북하지만 '노무현' 이후 친노가 복원되고 오늘날 '문재인'으로 재생한 것을 보십시오."

"새누리당이 과연 야당 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이릅니다. 하지만 귀하를 포함해 새누리의 지도자들이 단합해 '훌륭한 야당' 공부를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이 야당 해온 것 보면 그들이 정권 잡아도 중심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때 새로운 야당(새누리)이 정권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면서 대안 세력이 돼야 합니다.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지금 민주당이 한 것처럼 여당 붙들고 싸워서 좌파 일변도의 길로 못 가도록 하는 것이 보수 지도자의 과제입니다."

그 중진 의원은 무거운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지금의 새누리당이 과연 야당 할 각오가 돼 있는지, 야당이 된다고 해서 훌륭한 야당 기능을 수태할 수 있을 것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새누리당이 야당으로 바뀐다는 것은 조만간 닥쳐올 현실이다. 야당에 정권을 거저 내주기 싫은지 계속 지연 전술을 쓰는 대통령이나 어차피 나갈 대통령을 당장 '머리끄덩이'를 끌어 광화문에 팽개치려는 세력이나 나라의 앞날을 헤아리는 배려는 없어 보인다. 오로지 모두 '싸움'과 '전술'에만 몰두하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이제 나라를 더 이상 소용돌이로 몰지 말고 내려오십시오. 잘못했으면 물러나는 것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퇴진 세력도 박 대통령에게 길을 터주십시오. 어차피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게 돼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급하십니까?"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마당에 퇴진과 탄핵을 둘러싼 머리 굴리기와 수(手) 싸움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지금 권력이 눈앞에 있다고 기고만장한 정치인들, 자기들 노력으로써가 아니라 국민의 분노로 인해 차려진 '공짜 밥상' 앞에서 제대로 숟가락질도 못 하는 정치 군상, 그리고 그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흘러간 권력의 잔상―이것이 오늘의 정치 현주소다. 그리고 자기들과 견해가 다르다고 그들의 말과 글에 폭탄을 퍼붓고 온갖 저주를 서슴지 않는 군중심리와 공포정치는 과연 우리가 50여년 민주주의를 학습한 나라인가를 의심케 한다.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세운 군중 정치, 중국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이룬 민주화 현주소인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집권 세력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기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나라를 거덜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들이 5년 뒤 또는 그 이후라도 퇴장할 때 오늘 같은 국민적 내홍을 겪지 않게 할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4년 전 지금 퇴진 데모로 뒤덮인 바로 그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을 향해 감격의 당선 소감을 밝히는 박 대통령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것이 초라한 오늘 그의 모습과 교차한다. 우리나라의 불행한 정치는 머지않아 그 자리에서 감격의 당선 소감을 하게 될 인물이 5년 뒤 또 어떤 모습으로 퇴 장할는지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

모두들 '보수는 죽으라'며 마치 보수 자체에 결함이 있는 양 자해하느라 야단이지만 보수는 잘못이 없다. 잘못 선택한 기수가 보수에 먹칠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사이비 보수'다. 새로운 기수를 뽑고 권토중래하는 것―이것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보수가 할 역할이다. 새누리당의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