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김철중의 생로병사] '인공호흡기'를 끼고 자는 코골이 이비인후과 의사

최만섭 2016. 10. 11. 06:48

[김철중의 생로병사] '인공호흡기'를 끼고 자는 코골이 이비인후과 의사

입력 : 2016.10.11 03:07

北 김정은, 전형적 코골이 체형… 비만에 목 굵고 턱 뒤로 밀려
수면의학도 식품과학처럼 성장… 선진국에서는 코골이 치료 한창
현대의학은 질병 치료 넘어 먹고 자는 생활 영역으로 확대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K 교수의 침대 옆에는 잠잘 때 코에 끼는 기구가 있다. 자는 동안 코 안으로 공기를 넣어주는 장치, 이른바 양압기다. 인공호흡기처럼 튜브를 콧구멍에 끼우면 일정 압력의 공기가 코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50대 중반의 그가 양압기를 쓰는 이유는 점차 심해지는 코골이 때문이다. 코를 조금 곤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번거롭게 양압기를 쓸 의향은 없었다. 그러다 학창시절부터 코골이로 '악명' 높았던 선배 의사가 어느 날 아침 돌연사한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병원에서 하루 자면서 수면다원검사를 받았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자신이 가끔 환자에게 처방을 내던 검사였다. 비디오 촬영 상태에서 뇌파, 심전도, 혈중 산소 포화도 전선을 몸에 줄줄이 붙이고 잤다. K 교수는 녹화된 자신의 수면 모습과 검사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고 했다. 코를 몰아서 골면 수면무호흡증이 발생했고, 그때 혈중 산소 포화도가 60%대까지 뚝 떨어졌다. 산소 포화도는 최소 90% 이상이 정상이다. 만약 중환자실 환자의 산소 포화도가 그렇게 떨어지면 알람이 울리고, 의료진이 달려와 응급조치를 하는 상황이다. 아뿔싸! 잠든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K 교수는 그날로 양압기를 코에 달고 잠을 청한다. 술을 먹은 날은 코골이가 더 심해지기에 양압기를 반드시 쓴다고 했다.

수면무호흡증은 코골이의 진동으로 목 부위 공기 통로가 좁아지다가 막히는 현상을 말한다. '드르릉' 코를 골다가, '커~억' 하면서 숨이 10초 이상 멈춘다. 산소 공급도 잠시 중지된다. 이때 뇌(腦)는 필사적으로 산소 포화도를 올리려고 심장 박동을 늘리고, 혈압을 높인다. 교감신경 흥분 상태가 되어 자고 있어도 반(半)각성 상태가 된다. 나름 살기 위한 방책이지만, 반복적인 '지진 여파'로 부정맥이나 심근경색증이 잠자는 동안 일어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은 돌연사 위험을 2~3배 높여, '슬립 건'(sleep gun)으로도 불린다.

[김철중의 생로병사] '인공호흡기'를 끼고 자는 코골이 이비인후과 의사
/이철원 기자
고령 인구와 비만 계층이 늘면서 코골이 데시벨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뚱뚱하면 목에도 살이 쪄 공기 통로가 좁아진다. 목이 굵고 턱이 뒤로 밀린 체형이 코골이 취약층이다. 나이 들면 목 안 근육도 늘어진다. 성대 주변, 인·후두 근육이 탄력을 잃고 처져 목 안 구강이 좁아진다. 이 때문에 60세 이상 남성의 60%가 코를 곤다는 통계가 있다. 심한 코골이 셋 중 하나에서 수면 무호흡증이 생긴다. 소음 크기는 코골이 중증 상태를 정비례로 반영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전형적인 코골이 체형이라고 지적했다. 비만에, 목이 굵고, 턱이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최근 4년 동안 체중이 약 40㎏ 늘었다. 그가 즐기는 담배와 술은 코와 인후 점막을 붓게 해 코골이 데시벨을 높인다. 게다가 그의 집안은 심근경색증과 부정맥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은 낮시간 졸림과 심리 불안을 유발하고 판단력을 떨어뜨린다. 김정은의 코골이에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지 모를 형국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 삶과 몸을 바꿔 놓는다. 냉장고가 대표적이다. 20세기 초반까지 쓰이던 공장용 냉장창고는 1930년대부터 지금의 캐비닛 형태 가정용 냉장고로 발전해 보급되기 시작했다. 냉각 효율이 좋은 프레온 가스를 찾아내고, 냉매를 순환시키는 컴프레서의 크기와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결과다. 이후 인류는 음식 문화에 혁명을 맞는다. 소금을 치지 않아도, 삭히지 않아도, 신선한 음식을 오래 보존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위암과 식중독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양압기도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무소음 공기 순환 모터가 개발되고, 공기 흐름 압력을 자동 조절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중환자실 인공호흡기는 가정용 양압기로 진화했다. 트랜지스터 조합의 대형 산업용 컴퓨터가 기술의 진보로 스마트폰으로 들어와 손안에 쥐어지듯 말이다. 신문명과 현대의학은 이처럼 전문가 영역에서 시작돼 일반인 범주로 퍼져 나간다.

코골이는 21세기의 신종 만성질환이다. 선진국에서는 코골이 치료가 한창이다. 양압기 사용을 건강보험 치료로 적용해줄 정도다. 이제 수면의학은 식품과학처럼 성장할 태세다. 미래에는 좀 더 혁신적인 수면 보조 장치가 집이나 호텔에 장착돼 누구나 끼고 자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현대의학이 질병 치료를 넘어서, 먹고 자는 생활의 영역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처럼, 의학이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우선은 누군가가 북한 '최고 존엄'에게 양압기를 달아야 남북한 낮과 밤이 편안해지지 싶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