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천일야화

[한삼희의 환경칼럼] 기후가 점프하다

최만섭 2016. 10. 1. 06:24

[한삼희의 환경칼럼] 기후가 점프하다

올 1~8월 평균기온 '역대 최고' 작년보다 0.4도 높아 기록 또 깨
'2도 상승' 억제 이미 달성 불가능
화석연료의 60배 난로 켜놓고 살고 있다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올여름 지독히 더웠는데 그건 세계적 현상이었다. 미국 NASA 산하 고더드우주연구소(GISS)가 발표한 지난 8월 세계 평균 기온을 보면, 1880년 기온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고였다. '역대 최고'는 작년 10월 이후 연속 11개월째다. 연간 평균치로 따지면 2015년이 지난 136년 중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 1~8월 월별 평균 기온은 작년보다 대략 0.4도 높았다. GISS 책임자는 "넉 달 더 남아 있지만 2016년이 2015년 기록을 깰 확률은 99%"라고 했다.

최근 수십 년 기온 상승 속도는 10년에 0.13도 정도였다. 올해는 '역대 최고'였던 작년에서 다시 0.4도나 올라간 것이다. 뭔가 기온의 점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2015~16년 기온 상승은 엘니뇨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엘니뇨는 6월에 끝났다. 그런데도 7월, 8월 수은주 상승 기세가 떨어지지 않았다. GISS는 "엘니뇨 효과는 기온 상승의 20% 정도로 본다"고 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건 9월 들어 일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400PPM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1년 중 5월에 최고점을, 9월에 최저점(最低點)을 찍으면서 우(右) 상승 그래프를 그린다. 앞으로 일평균 농도가 400PPM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향후 몇백 년 내엔 없을 것이다. 400PPM은 지구 과거 역사 400만년 사이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작년 12월 세계 각국은 '기온 상승치를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아래로 묶자'는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세계 기온 관측망들을 종합해 평가하는 '클라이밋 센트럴'이라는 단체는 올 1~8월 기온이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880년 수준보다 이미 1.29도 정도 높은 상태라고 분석했다.

기온 상승은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보다 25~75년쯤 뒤따라가며 구현된다. 바다 표면에 가해진 햇빛 에너지가 표층 바다 전체로 퍼져 나가는 데 그만한 기간이 소요된다. 이걸 바다의 '열 관성(thermal inertia)'이라고 한다. 이로 인한 시간 지체(遲滯) 현상 때문에 최근 수십 년간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기온 상승 효과로 아직 반영되지도 않은 상태다.

경제 시스템에도 관성(慣性)이 있다. 인간이 당장 기후변화 대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열 관성'과 '경제 시스템 관성'을 함께 감안한다면 '2도 상승 이내 억제'는 이미 달성 불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은 수백 년, 길게는 수만 년 이상 수명을 갖는다. 흘러가 사라지는(flow) 오염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가는(stock) 오염이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전 280PPM이었던 것이 지금은 400PPM을 넘어섰다. 120PPM만큼 추가로 축적됐다. 그 120PPM의 이산화탄소가 갖는 온난화 작용력은 화석연료를 연소시킬 때 나오는 열량의 60배를 훨씬 넘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매년 소비하는 화석연료보다 60배 이상 강력한 난로를 켜놓고 사는 셈이다. 난로의 화력은 갈수록 강해진다.

기후변화 피해는 이산화탄소 축적량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뚜렷한 피해가 없거나 긍정 효과와 부정 효과가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다가 차츰 부정 효과가 강해져 어느 순간엔 기후 균형이 무너지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찾아올 수 있다. 지금이 혹 그런 임계점에 접근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임계점이 어느 시점에 닥칠지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기후 붕괴에 대한 진지한 각성(覺醒)을 일으키기 어렵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