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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3410만t 수렁' 빠진 탈원전 온실가스 정책

최만섭 2019. 9. 4. 05:21

[한삼희의 환경칼럼] '3410만t 수렁' 빠진 탈원전 온실가스 정책

입력 2019.09.04 03:17

국가 배출 7억t 돌파… 원전 대국 佛의 두 배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뻥 뚫린 구멍
탈원전 포기하면 연 1억t 여유 생겨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기후변화(climate change)나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같은 용어를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 등으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기후변화'는 무미건조하고 '지구온난화'는 기후가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기후 붕괴는 지진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지진은 지각판끼리 마찰력이 누적되다가 더 견딜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왔을 때 지각판이 퉁겨지면서 발생한다. 유럽 폭염, 아마존 산불 같은 현상들은 본 지진이 터지기 앞서 전진(前震)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 사회는 분명한 전조 현상을 목격하면서도 심각성을 못 깨닫고 있다.

한국이 대표 사례다. 환경부가 작년 9월 2016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6억9410만t) 통계를 발표했다. 며칠 전 2017년 통계를 물어봤더니 "7억t에서 7억1000만t 사이"라는 답이 왔다. 2018년은 대략 7억2000만t 안팎일 걸로 짐작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안간힘이다. 우리 정부도 2030년 배출 목표를 5억3600만t으로 잡아놓고는 있다. 그러려면 매년 1000만t씩 줄여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 거꾸로 1000만t씩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온실가스 정책은 수렁에 빠져 있다. 탈원전으로 스텝이 꼬였다. 전문가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3410만t 문제'라는 것이 있다. 문 정부는 작년 7월 '2030년 온실가스 로드맵 수정안'을 내놨다. 탈원전을 반영해 이전 정부 로드맵을 고쳤다. 국제 공표한 '2030년 5억3600만t' 목표는 그대로 뒀다. 그런데 원전을 대폭 줄이다 보니 발전(發電) 분야에서 펑크가 났다. 박근혜 정부 때는 발전 분야에서 전망치(BAU) 대비 6450만t을 줄이기로 돼 있었다. 이 목표를 5780만t으로 낮춰 잡았다. 그것도 2370만t만 구체 감축 계획을 만들었고, 나머지 3410만t은 '나중 추가 감축 방법을 찾아본다'는 것으로 봉합하고 끝냈다.

로드맵이란 목표까지의 도달 경로를 담은 지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도의 경로 중간이 끊겨버렸다. 이런 로드맵을 본 적이 없다. 연구원·전문가들로 '로드맵 작업반'(22명)과 '기술 검토반'(18명)을 조직하고 토론회, 포럼, 민관 협의체, 업계 간담회를 10여 차례 개최했다. 그런데도 3410만t 구멍이 났다. 지금까지도 메울 방도가 오리무중이다.

온실가스는 석탄발전소가 가장 문제다. 영흥도에 석탄 화력발전소가 6기 있는데, 이것들이 연간 먹어치우는 석탄이 기당 250만t이다. 25t 덤프트럭 10만대 분량이다. 석탄을 태우면 탄소 성분이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돼 날아간다. 그 이산화탄소량은 석탄 중량의 2.4배쯤 된다. 영흥도 석탄 화력 한 기에서 연 600만t 나온다. 지구 하늘이 막대하다 해도 당해낼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100조원을 태양광·풍력 설비에 쏟아붓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3410만t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원전을 동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흥도 6기를 포함해 15개 석탄발전소를 갖고 있는 남동발전은 작년 한 해 6800만㎿h의 전력을 생산하면서 5750만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23개 원전을 가진 한국수력원자력은 남동발전의 두 배 전력(1억3860만㎿h)을 생산했는데 배출 이산화탄소는 5.8%(333만t)밖에 안됐다. 단위 생산 전력당 배출량이 남동발전의 2.8%다.

정부가 2030년까지 폐로시키겠다는 11개 원전과 건설이 백지화된 6개 신규 원전 시설 용량을 모두 합하면 남동발전의 1.7배만큼의 시설을 대체할 수 있다. 거의 1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막게 된다. 정부가 쩔쩔매는 3410만t은 문제도 안 된다. 산업계는 현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감축 의무를 추가(연 4220만t) 부과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산에 나무를 더 심어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외국서 배출권을 사들여 충당하겠다는 3830만t도 허황된 계획이라는 전문가들이 많다. 탈원전을 포기하면 이런 고민과 불확실성 모두 한 방에 해결 가능하다.

58기 원전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2014년 1인당 온실가스 배출(5.38t) 은 한국(13.24t)의 40%였다. 프랑스가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GDP도 높지만 국가 배출량 역시 한국 절반이다. 원전을 돌려 석탄발전을 대체하면 미세 먼지도 줄일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요금 인상 부담이 가벼워지면 신재생 확충도 훨씬 쉬워진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끊어진 경로'도 거뜬히 이어붙일 수 있게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3/20190903031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