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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탄소배출 ‘기후악당국’ 찍힌 한국, 이러다 ‘기후허풍국’까지 된다

최만섭 2020. 12. 11. 05:16

[논설실의 뉴스 읽기] 탄소배출 ‘기후악당국’ 찍힌 한국, 이러다 ‘기후허풍국’까지 된다

정부의 허망한 ’2050 탄소중립'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입력 2020.12.11 03:00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 참석해 "2050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라고 말하고 있다. /뉴시즈

환경부는 매년 9월 전전년(前前年)의 온실가스 배출 실적을 발표해왔다. 국제사회에 보고해야 하고, 기업의 잉여 배출권(權)과 연관되기 때문에 꼼꼼한 검증에 1년 8개월이 걸린다. 올해는 9월 29일에 2018년도 수치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실적이 2016년보다 1620만t 늘어났는데, 2018년엔 다시 2017년보다 1790만t 늘었다<그래프>.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식 약속한 ’2030년 5억3600만t’을 달성하려면 매년 1000만t 이상씩 줄여가도 모자란다. 그런데 되레 2017~18년 2년간 3410만t 늘었다. 특히 2018년 급증은 원전 가동을 억제하면서 LNG 발전이 24.6%나 늘어나 발전(發電) 배출이 1700만t 증가한 탓이 컸다

 

그런데 환경부는 2018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2019년 배출 추정치는 7억280만t’이라고 덧붙였다. ‘잠정 집계’라는 단서를 달아 미(未)검증치를 함께 공개한 것이다. ’2018년엔 전년 대비 2.5% 증가했지만 2019년엔 3.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물타기 꼼수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한국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에야 처음 줄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기간이 촉박하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솔직한 정부라면 배출량이 두 해 연속 크게 증가한 것에 대해 반성부터 했을 것이다. 문 정부는 그게 아니라 2019년 추정 실적이 2018년 배출치보다 작은 것을 들어 “처음 감소했다”고 자랑했다. 이 정부의 장기(長技)인 ‘뒤집어 되치기’가 여기서도 발휘됐다. 2019년 추정치를 인정하더라도 지난 정부(2016년)보다 아직 930만t 많다. 사실은 2014년에 전년 대비 배출량이 감소한 적이 있어 처음도 아니었다.

 

국제사회가 ’2050 탄소중립'을 향해 가고 있으니 우리도 보조를 맞추긴 해야 한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은 현실적 목표가 아니다. 녹색성장의 기치를 들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2009년 ’2020년 배출을 5억4300만t까지 억제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그런데 2018년 실적은 이미 ’2020 목표치'보다 1억8400만t이나 초과해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파리 기후총회를 앞둔 2015년 6월 ’2030 목표치'를 발표했는데 5억8500만t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2020 목표'보다 되레 후퇴한 수치였다. 그런 후 박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서 직접 ‘더 야심찬 목표를 내달라’는 채근을 받고 나서 애초 목표치를 다소 강화한 ‘5억3600만t’을 2030 목표로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걸 이어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후행동추적(CAT)이라는 국제단체가 2016년 11월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호주·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악당 국가’로 분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배출량은 계속 늘고 국제사회에 한 약속도 지키지 못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10월 28일 느닷없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왔다.

 

이것이 얼마나 아득한 목표인지는 정부 의뢰로 민간 전문가 69명으로 구성된 ’2050 저탄소 사회비전 포럼'에서 올 2월 발표한 안과 대조해보면 알 수 있다. ’2050 포럼'의 다섯 안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것이 2050년 배출치를 1억7890만t까지 끌어내리자는 것이었다. 2017년 배출치에서 75%를 감축한다는 안이다. 포럼은 이것이 ‘고려 가능한 모든 옵션을 포함한 가장 도전적인 안’이라고 했다. 석탄 화력 비율은 현재의 10분의 1(40%→4%)로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10배(6%→60%)로 확대하고, 친환경차 비율을 현재 3%에서 93%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75% 감축'도 모자라니 ’100% 감축'으로 가자는 것이다

 

환경부가 지난달 19일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공청회에서 제시한 것을 보면 2050 탄소중립을 위해 동북아 수퍼그리드를 실현하고, 제철소 용광로를 코크스가 아닌 수소로 돌린다고 돼있다. 이렇게 해서도 줄일 수 없는 부분들은 탄소포집·저장(CCS), 탄소직접포집(DAC) 기술로 제거해 상쇄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11년 전 ’2020 목표'를 내놓으면서 CCS 활용을 언급했다. 그러나 아직도 CCS 상용화는 아득하다. 만약 CCS로 현재 배출량의 10%(7000만t)만 처리한다고 해도 매일 20만t짜리 유조선만큼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깊은 바다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일반 공기 중에서 0.04%밖에 안되는 이산화탄소를 끌어모은다는 DAC기술이 과연 실용화하는 날이 오긴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산업 분야에서 수소를 에너지, 또는 환원제로 쓰려면 수백만t이 필요하다. 그래서 호주에서 석탄이나 태양광으로 만든 액화 수소를 수입해오자는 주장이 있다. 액화하려면 마이너스 253도를 유지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해서 경제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동북아 수퍼그리드라는 것도 중국·일본이 동의해야 하는 일이고,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2050 탄소중립’은 에너지 구조와 경제 시스템에 ‘천지개벽’을 몰고올 만한 일이다. 남들 다 하겠다는데 우리만 가만있기 뭣해 체면치레로 내놓는 거라면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진지한 것이라면 경제 충격을 덜기 위해서라도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달 23일 “탈원전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고 2050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누가 들어도 수긍하는 부분일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효과가 큰 원전은 없애겠다고 하면서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하니 허망한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2015년 파리협정 “기온상승 1.5도로 억제” → 2018년 IPCC “2050년 탄소중립”… 문제는 실현 가능성]

’2050 탄소중립'이란 말이 나온 계기는 2015년 파리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기후협정은 ’210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치를 산업혁명 전과 비교해 2도보다 상당히 낮게(well below 2℃), 가능하면 1.5도 아래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일단 2도를 기본 목표로 삼은 것이고,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 도서 국가들의 강한 요구를 반영해 ‘1.5도’라는 부수적 목표치를 병렬했다.

 

파리협정 체결 당시 기후협약 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에 ‘1.5도 이내 상승 억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IPCC는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국제기구로, 현재 의장은 한국인 이회성 박사이다. IPCC는 요구에 부응해 2018년 10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IPCC는 보고서에서 ‘1.5도 이내 억제’를 이루기 위해선 ’2010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5%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이뤄야 한다'는 경로(pathway)를 제시했다. ‘탄소중립(net zero)’이란 일단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 한도로 줄인 다음, 그래도 배출한 부분은 산림 조성이나 탄소포집·저장(CCS) 등으로 상쇄해 순(純)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것이 실행 가능한 목표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2010년 배출량은 6억5630만t이었다. 2030년까지 여기서 45%를 줄이려면 3억6096만t까지 낮춰야 한다. 이건 우리가 2015년 파리협정 체결 때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5억3600만t의 67% 수준이다. 이걸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2050년까지는 거기서 다시 3억6000만t을 더 줄여 ‘순배출 0’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에너지 구조는 거대 시스템이다. 초대형 유조선이 항로를 변경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바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인프라 개조에는 수십 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현재 신규 석탄발전소 7개를 짓고 있는데 여기서만 한 해 최대 5000만t 넘는 온실가스가 나온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선 이것들을 30년 수명 이전에 다 폐기해야 한다. 경제의 기둥인 제철소, 석유화학 공장, 시멘트 공장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한삼희 선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