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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내우외환(內憂外患)

최만섭 2016. 9. 27. 19:46

김대중 칼럼] 내우외환(內憂外患)

  • 김대중 고문

입력 : 2016.09.27 03:11

장관 한 사람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야권, 정치게임 몰두
국민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처사…
2류·3류 국가 전락할 위기에서 나라 안정시키고 국민 단합시킬 아량·양보 아는 정치 아쉬워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이런 걸 가리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꼭 그렇다. 밖으로는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안보상의 문제가 갈수록 험악해지고 안으로는 정치적 내홍(內訌)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나마 어느 것 하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더 문제다.

북한의 핵무장은 5차 핵실험을 넘어 수소탄,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은 유엔 총회연설에서 북한은 어느 경우도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전 세계에 공언했다. 우리가 무슨 '비핵화' '전술핵' '핵 동결' '유엔 제재' 운운하며 아무리 떠들어도 북한의 가는 길을 되돌릴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안보는 이제 북핵을 기정사실로 보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도 그 방향으로 돌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6일 자 국제면 톱기사에서 김정은은 결코 '이성을 잃은 미친 사람'이 아니며 그의 핵무장은 북한을 붕괴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계산되고 이성을 잃지 않은 행동'이라고 새로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의 '합리성'이 오히려 위험한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20일 자 1면 기사로 사람들은 김정은이 허약하며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평가이며 그는 오히려 '노련한 독재자'라고 재평가했다.

미국 주요 언론의 이 같은 보도는 두 가지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그를 심각하게 상대해야 하는 만큼 북한을 달래서, 즉 협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그러니 아예 지금이라도 강하게 눌러야 한다는 것이 둘이다. 때마침 보도된 퓨리서치 등 미국 여론조사 결과는 한반도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개입에 찬성하는 여론(47%)보다 반대(49%)가 앞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의 대외 개입 축소 정책에 따라 한국의 안보는 어쩌면 치명적 손상을 입을는지도 모른다.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대외 문제에서 앞으로의 미국은 어제의 미국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쓸모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재래식 또는 대칭 무기에만 매달리며 서로 예산 따내느라 야단법석이다. 우리는 함경도 지역에 유례없는 홍수가 났는데도 거기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유도탄 추진제 점화 실험을 참관한 김정은을 비난하고 있지만 김정은은 한국식 포퓰리즘에는 관심이 없는 듯 오로지 미사일과 핵에 전념하고 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눈을 우리 내부로 돌리면 우리의 정치는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다. 나라 밖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우리의 모든 경제지표는 외환위기 때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류, 3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지진 민심도 예사롭지 않다.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정치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장관 한 사람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와 야권이 치고받는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손에 총이라도 쥐여주면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다. 어차피 이 싸움은 시간적으로 레임덕 상황에 몰리는 현직 대통령과 다음 정권을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된 야권의 총력전 성격이 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중차대한 시기에 너무나도 자제력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국민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다음 정권을 노리는 야당이라면 그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아니라 '저들에게 정권을 맡겨도 괜찮을 것인가'를 저울질하는 유권자, 특히 붙박이 친박·친노가 아닌, 30~40%의 중도 성향 국민이다. 장관 된 지 며칠 안 되는 사람을 뚜렷한 설득력도 없이 '해임 건의' 하는 것은 오만한 정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국 경색이 가져올 국민의 실망과 걱정을 의식해 타협한다면 그가 이기는 것이 되고 야당은 큰 악수(惡手)를 둔 것이 된다.

여기서 굳이 해임 건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단합시킬 수 있는 아량과 용기를 가진 정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다. 또 우리 정치에서 일찌감치 배제된 타협과 양보가 아쉬워서이다. 미국에서 미 해군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 스파이란 의혹을 받아 복역하고 나온 로버트 김씨는 며칠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과 관계에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한국이 한국을 둘러싼 세상의 움직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