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불법파업으로 회사 망해가는데, 귀향은 무슨…"

최만섭 2016. 9. 14. 05:55

"불법파업으로 회사 망해가는데, 귀향은 무슨…"

입력 : 2016.09.14 03:00

[우울한 추석]
공장 멈춰선지 68일째… 출구 못찾는 중견기업 '갑을오토텍'

- 노조 "임금 인상하라" 공장 점거
"협상 안하면서 노조파괴 공작"
- 사측 "적자 심한데…" 직장 폐쇄
"생산직 평균 연봉만 8400만원"

경찰은 "알아서 해결해야" 방치
납품 못해 거래처들 다 끊길 판

지난 9일 오전 8시 40분쯤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갑을오토텍 공장 정문 앞. 똑같은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 근무복을 입은 갑을오토텍 직원 수백 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다. 정문 바깥에선 이 회사 관리직원 180여 명이 '우격다짐 우겨대면 불법점거 합법 되냐' '회사 파괴를 제발 멈춰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반대편에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노조원들이 '민주노조 사수'라고 적힌 조끼를 근무복 위에 입고 관리직원들의 출근을 막았다. 경찰이 "관리직 사원의 출근을 저지하는 것은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는 방송을 내보냈지만, 노조원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날 내내 바리케이드가 반쯤 쳐진 정문 앞에선 노조원 두 명이 형광봉을 들고 오가는 인원과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지난 9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갑을오토텍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오른쪽) 앞에서 관리직 사원들(왼쪽)이“불법 점거 농성을 풀고 공장 진입을 허용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갑을오토텍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오른쪽) 앞에서 관리직 사원들(왼쪽)이“불법 점거 농성을 풀고 공장 진입을 허용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동차용 에어컨을 생산하는 갑을오토텍은 지난 7월 8일부터 60일 넘게 공장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자동차·중장비용 에어컨을 만드는 갑을오토텍은 지난 7월 8일 시작된 노조 파업으로 13일 현재 68일째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노조원 400여 명은 공장에서 숙식(宿食)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행법상 생산시설을 점거한 파업은 불법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사측이 7월 26일부터 '직장 폐쇄'로 맞서며 양측의 갈등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사측은 원래 노조원들을 공장에서 내보낸 뒤 관리직 사원들을 투입해 일부 라인이라도 가동할 계획이었지만, 노조의 퇴거(退去) 거부로 무산됐다. 지난해 117억원의 적자를 본 이 회사는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난 두 달 동안에만 500억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기록했다. 이 회사 정민수 이사는 "9월 말이면 회사 현금 잔고가 바닥나서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생산 중단으로 납품이 중단되자 국내외 거래업체들은 속속 갑을오토텍에 "거래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다"고 통보하고 있다. 해외영업 담당 직원 A(29)씨는 "왜 정해진 날짜에 납품을 하지 않느냐"는 해외 거래처의 항의 전화를 처리하기 위해 이번 추석 연휴 귀향도 취소했다.

이 회사는 IMF 때 망했던 만도기계의 일부 사업부를 갑을상사가 인수한 곳이다. 이 회사 노조는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중에서도 강성으로 꼽힌다. 한 노동 문제 전문가는 "만도기계 시절부터 노조가 회사 사정에 아랑곳없이 불법 파업을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불법 파업 현장에도 상급단체인 민노총과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노조는 상여금 100% 인상과 직원 채용 시 노동조합의 거부권 인정,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한 면책 조항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평균 연봉 8400만원으로 적지 않은 임금을 받는 노조원들이 최근 몇 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한 회사 사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 직원 채용 거부권이나 면책 조항은 회사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 관리직 사원은 "노조는 '회사가 망해도 생산직 노조원들은 새로 인수된 회사로 고용이 승계돼 계속 일할 수 있다'고 믿고 버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도 않으면서 노조 파괴 공작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갑을오토텍은 지난해 기존 노조와는 다른 복수(複數) 노조를 만들었는데, 여기 가입한 경찰과 특공대 출신 용역 직원들이 기존 노조원들을 폭행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갑을오토텍 박모 전 대표이사가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재헌 민노총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은 "지금 일어나는 일도 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연장선상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노사의 출구(出口) 없는 대치가 계속되는 건 불법 파업을 방치하는 경찰의 무관심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노사 문제는 노사끼리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며 "당분간 공권력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 가들은 "갑을오토텍 사태는 한국형 노사 갈등의 문제점만 모아놓은 사례"라며 "이대로 가면 노사가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두 달 넘게 협상 주제도 합의하지 못한 채 기 싸움을 벌이는 노사 양측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떤 실질적인 노력도 하지 않은 당국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