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데스크에서] '無분규'라더니 위장 평화?

최만섭 2016. 9. 12. 06:27

[데스크에서] '無분규'라더니 위장 평화?

입력 : 2016.09.12 03:12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사진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요즘 현대중공업노조를 보면 과연 1995년 이후 19년 연속으로 무분규를 기록했던 그 노조가 맞나 싶다. 회사는 사상 최악의 조선업 불황 속에서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노조는 "사업장을 멈춰도 좋다"며 파업 불사를 외치고 있다. 현대중노조는 지난달 26일에도 오전 9시부터 7시간 부분 파업을 벌였다. 올해 임단협 협상 중 벌인 네 번째 파업이다. 이번 현대중노조의 주장은 사외이사 추천권 인정,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同數) 구성, 퇴직자 수만큼 신규 사원 채용, 조합원 100명 이상 매년 해외 연수, 임금 9만6712원 인상(호봉 승급분 별도) 등이다. 위기의 기업에서 나올 노사 간 쟁점은 아니란 지적이 많다.

한때 강성 노조의 표상이던 현대중공업노조는 이제는 무리한 파업과는 담을 쌓은 '새로운 노조'로 변신했다고 알려졌었는데 왜 이러는 걸까. 그 원인의 단초를 찾아봤다. 2005년 한국조선협회가 출간한 '한국 조선 20년'사라는 책에 이런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체 노조는 (여전히) 강성이다. 하지만 매년 임금단체 협상에서 노조가 요구하는 상당 부분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며, 이는 무분규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노사 문화는 이렇게 위장된 측면이 강하다. 사측이 호황 덕분에 남긴 천문학적인 수익으로 강성 노조를 달래왔다는 것이다. 현대중노조 역시 현 상황처럼 강성이 된 데는 원칙 없이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 사측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구조조정 국면에서 많은 전문가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첫째 이유는 노조에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란 목소리를 낸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973년 설립 이후 회사에서 강제 퇴직을 당한 노조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작년 이후 퇴출당한 사무직 직원은 3300여명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무너지는 과정에 경영진의 과오가 크겠지만 우리 현실을 보면 노조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 "기업이 퇴출당해서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줘야 우리 노사 문화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한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 공장을 찾아 노조위원장과 인터뷰를 하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당시 도요타는 사상 최고치 실적을 이어갈 무렵인데, 회사 측은 노조 측에 점점 격화되는 글로벌 시장을 감안해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차원에서 2020년까지 20% 비용 절감을 요구했다. 대신 임금은 월 4000엔(약 4만3000원) 인상을 제안했다. 이에 노조의 반응은 "4000엔 인상을 해도 회사가 괜찮겠냐"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50년 무분규 공장 도요타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요타의 1인당 평균 임금은 약 780만엔(8400만원) 정도로 현대차 940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위장된 변화를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어 내는 것이 구조조정 국면의 또 다른 숙제라는 생각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