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렌드 돋보기] 망한 스타트업을 찾아갔다

최만섭 2016. 4. 27. 22:29

[트렌드 돋보기] 망한 스타트업을 찾아갔다

김신영 경제부 기자 사진
김신영 경제부 기자

갓 망한 회사 사무실엔 처음 가봤다.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회사 정리 작업을 하는 서른네 살 전주훈씨는 열흘 전까지 직원 8명을 둔 스타트업 사장이었다. 청소 도우미를 스마트폰 앱으로 연결해주는 '홈클'이란 회사였다. 명함을 내밀자 그는 "저는 명함이 없어져서…"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1년 전 문을 연 '홈클'은 스타트업계의 스타였다. 바쁜 직장인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예약이 쏟아졌고 월 매출이 평균 30%씩 늘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던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손님이 몰리는 회사가 어떻게 망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전씨에게서 작은 회사가 사라져간 과정을 들었다. 그는 2억원을 투자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초기부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직업안정법의 '선급금 금지' 조항이었다. 예컨대 서비스 이용자가 직접 청소 도우미에게 돈을 줘야지 중개 업체가 돈을 미리 받아 전해주면 안 된다는 법이다. 이른바 '티켓 다방' 주인이 임금을 착복하는 등의 악습을 차단하려는 조항인데 '홈클'에도 적용되는지 애매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휴대폰으로 카드 결제받아서 도우미 분에게 현금으로 드리면 불법인가요?" "선급금은 안 됩니다" "강제로 시킨 일이 아니면 괜찮다는 유권해석도 있던데요" "그거 쓴 직원 그만뒀어요. 선급금은 안 된다니깐요."….

규제와 씨름하며 어정쩡하게 도우미 임금을 지급하는 사이 여러 달이 흘렀다. 규제를 궁극적으로 피해갈 임금 정산 프로그램 개발에 예상보다 큰돈이 들어갔다. 매출이 늘긴 했지만 순익은 마이너스였다. 투자받은 돈이 바닥났다. 무난히 추가 투자를 받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오판이었다. 대기업들이 비슷한 사업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돌자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당연해요. 대기업과 경쟁해서 이긴 스타트업은 없으니까요."

마지막 대안은 있었다. 이른바 '기술 금융'을 통한 은행 대출이었다. 그러나 대출만은 싫었다. 연체하면 '무서운 추심'이 들어온다고 수없이 들은 터였다. 전씨는 지난 9일 직원들에게 회사를 접겠다고 전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했습니다"로 시작하는 고별사에 직원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홈클'의 흥망성쇠를 듣고 일어서는데 사무실 칠판에 쓰인 'I'll be back'(돌아올 것이다)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전씨는 "환경 탓하지 않고, 더 좋은 사업 모델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가 다시 도전할 때쯤엔 우리 사회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보다 덜 척박해질까.

매년 스타트업 수백 개가 생기고 이 중 90%가 문을 닫는다. 기업의 흥망(興亡)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규제, 대기업의 상권 진출, 리스크를 지지 않는 기술 금융 등 스타트업을 주저앉히는 한국적 관행이 억울한 실패자와 답답한 패망사(史)를 계속 만들어낸다면 창업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끊길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