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사진](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4/25/2016042502801_0.jpg)
그는 기다림을 골랐다. 나중에 암이 커졌을 때 수술해도 생존율에 차이가 없다는 논문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래도 내 몸에 암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니….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랬다가 나중에 암이 번지면 어떡하지? 괜스레 화를 자초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암은 자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평정심을 되찾았다. 지금은 암도, 맘도 편안해진 상태다.
이처럼 갑상선암으로 진단된 상태에서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의료 행위'를 능동적 감시라고 한다. 자라는 속도가 더딘 거북이 갑상선암이니까 가능한 처치다. 이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통계를 믿고 기다려 보자는 일본 의사의 말을 갑상선 암환자들이 따른 것이다. 첫 시작은 1993년, 고베 구마(Kuma) 대학병원에서 이뤄졌다. 대상은 1㎝보다 작은 유두암이었고, 스스로 기다림을 선택한 환자들이다. 이제 20년이 훌쩍 흘렀다.
기다림의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해 22년의 임상 연구 통계가 국제학술지에 발표됐다. 10년 넘게 능동적 감시에 참여한 환자 1235명 중 92%는 암이 자라지 않았다. 8%는 기다리는 동안 원래 크기보다 3㎜ 또는 그 이상 커졌다. 3.8%는 주변 림프절로 암세포가 번졌다. 40세 이전 환자에게서 갑상선암이 진행된 경향이 많았고, 60세 이상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았다. 고령일수록 기다릴 만하다는 의미다. 갑상선암이 커졌다고 판정된 환자들에게는 즉각적인 수술이 이뤄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기다리다 수술 받은 그룹에서 암 진단 즉시 받은 그룹보다 성대 마비 같은 수술 후유증이 적었다. 차분한 대처의 결과일 수 있고, 암 덩어리 위치가 기다려도 될 만한 편한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4/25/2016042502801_1.jpg)
전반적인 생존율은 기다린 쪽과 즉시 수술 쪽이 차이가 없었다. 능동 감시 참여자 중 갑상선암으로 죽은 환자는 없었다. 여섯 명이 유방암이나 폐암, 뇌출혈 등으로 사망했을 뿐이다. 결국 기다릴 만한 상황에서는 기다려도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도 갑상선암 과잉 수술 논란이 일면서 능동적 감시에 참여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간에 묘한 차이가 있다. 갑상선 질환 전공 내과 의사들에 따르면, 능동 감시 대상에게 수술과 기다림 두 가지를 제시하면, 기다림을 선택하는 환자 비율이 우리나라는 대체로 일본보다 낮다. 한국에서는 불안해서 기다리지 못하거나, 애초에 싹을 자르겠다는 환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암 대처에도 성향과 기질이 반영되는 법이다.
기실 암 진단 받고 나서 잠자코 있으며 맘 편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앞으로는 그 불안이 더 커질 전망이다. 첨단 유전자 진단 기법이 혈액 속에 떠돌아다니는 암세포 조각을 찾아내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는 CT·MRI·내시경 등으로 암을 확인하기도 전에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세포 조각만으로도 암 환자라고 진단 붙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셀 프리(Cell Free) DNA' 검사다. 몸에서 암세포가 자리를 잡아 성장하는 과정에는 암세포 DNA 조각이 혈액으로 나온다. 이를 DNA 유전자 변이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암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결정적 단서이기에, 결과가 양성이면 몸 어딘가에 암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진단 기술이 점차 발전해 피에서만 암세포 조각이 발견되고, 몸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기다리고 있으면 암이 곧 나타날 것입니다"가 되는 셈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불안한 일인가. 현재 전 세계 유명 유전자 진단 회사들이 '셀 프리 DNA' 진단에 뛰어들고 있으니, 이는 곧 현실이 된다.
고령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그리고 고령자 셋 중 하나는 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