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멀리하느냐 즐기느냐는 '측중격핵' 안의 신경세포가 좌우 약물·도박 중독 치료할 길 열려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사람은 그런 사진만 봐도 몸서리를 친다. 왜 어떤 사람은 위험한 행동을 사서 하고, 어떤 이는 위험의 '위'자만 봐도 고개를 돌릴까. 미국 스탠퍼드대 칼 다이서로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뇌의 특정 신경세포가 작동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위험에 대한 태도가 180도로 달라진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과 뇌 구조가 흡사한 쥐로 실험을 했다. 쥐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한쪽 지렛대를 누르면 설탕물이 늘 같은 양이 나온다. 다른 쪽 지렛대는 도박과 비슷했다. 대부분 설탕물이 다른 쪽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나오지만 가끔은 선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쥐 3분의 2는 늘 같은 양의 설탕물을 택했다. 안정적인 봉급을 택한 셈이다. 도박꾼 쥐는 가끔 쏟아지는 설탕물을 기대하고 '로또' 지렛대만 눌렀다.
사람이나 쥐나 음식과 같은 보상을 받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뇌 영역이 있다. 바로 보상중추이다. 연구진은 그중에서도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이란 영역에 주목했다. 이곳의 신경세포에는 '도파민 수용체 2(D2)'라는 단백질이 붙어 있다. 도파민은 뇌에 즐거움을 전달하는 호르몬이다.
봉급쟁이 쥐도 가끔 로또 지렛대를 눌렀다. 이때 설탕물이 찔끔 나오면 D2 단백질이 있는 신경세포로 강하게 '실패' 신호가 왔다. 쥐는 정신을 차리듯 바로 늘 같은 양의 설탕물이 나오는 지렛대로 옮겨갔다. 도박꾼 쥐는 실패를 경험해도 신경신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도박꾼 쥐를 봉급쟁이 쥐로 바꾸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도박꾼 쥐가 적은 설탕물을 얻는 실패를 맛본 순간 빛으로 D2 단백질을 자극했다. 그러자 이전과 달리 강한 신호가 신경세포로 전달됐다. 이후 도박꾼 쥐는 양쪽 지렛대를 절반씩 눌렀다. 로또만 바라던 행동이 어느 정도 봉급쟁이 성향으로 바뀐 것이다. 반대도 가능했다. 파킨슨병 치료에 쓰는 '프라미펙솔(pramipexole)'은 도박 중독을 부르는 부작용이 있다. 연구진은 봉급쟁이 쥐의 측
중격핵에 이 약을 투여했다. 그러자 쥐는 로또 지렛대를 누르기 시작했다.
예일대 이대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물이나 도박 중독과 같이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과 관련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레버 로빈스 교수도 "실제로 약물 중독 환자의 뇌는 도박꾼 쥐처럼 D2 단백질이 있는 신경세포의 신호가 약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