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린 데 많은 정당일수록 빈 공약으로 제 허물 덮어
일본 전문가, 한국 경제 10년 전 일본과 너무 닮아
이런 깜깜한 총선은 보다가도 처음이다. 투표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어느 당 쪽으로 대세(大勢)가 기우는지 감(感)조차 잡기 힘들다. 여론조사 업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갖가지 전망을 쏟아내지만 다 공연한 소리다. 대선에 귀신, 총선엔 등신이 여론조사다. 서울 강남(江南) 선거구 분위기에 강북형(江北型) 민심이 섞이고 강북 선거구는 '강남형 민심'이 들어서는 기미가 보인다고 한다. '숨어있는 여당 표' '숨어있는 야당 표'가 승패를 가른다고도 한다. 예측이 어긋날 경우에 대비한 일종의 알리바이 만들기처럼 들리는 말이다.
4·13 총선은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 치러지는 정권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다. 전망이 어려울 것도, 선거 전략이 복잡할 것도 없다. 정권 실적이 탄탄하면 집권당이 유리하다. 반대로 정권의 실적이 초라하면 야당이 유리하다. 선거 전략도 마찬가지다. 실적에 자신이 있는 여당은 '지난 3년처럼 앞으로 2년도 이대로 밀고 나가겠습니다'고 하면 그만이다. 굳이 덧붙인다 해도 '야당이 국정(國政) 운영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압도적인 표(票)를 몰아 주십시오'라는 한마디로 족하다.
야당도 다를 게 없다. 지난 3년 동안 정권을 담당할 실력을 보여준 야당이라면 '나라를 바로잡겠습니다. 정권에 경고를 보내는 뜻으로 우리 당을 밀어 주십시오' 하는 것 말고 다른 전략이 필요하지 않다.
4·13 총선은 이런 중간선거 본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투표를 열흘 앞둔 지금도 선거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여당·야당 가릴 것 없이 말만 많다. 대통령선거로 착각한 듯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당당하게 정권의 실적을 놓고 겨루지 못하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기 바쁘기 때문이다. 정권 심판론과 국회 심판론은 자르는 기능을 잃은 가위가 그 책임을 두고 윗날과 아랫날이 다투는 꼴이다.
여야가 고정(固定)자산인 양 여기던 홈 구장(球場) 사정도 크게 변했다. 대구·경북의 민심 변화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호남은 연고권(緣故權)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현(現) 대통령 세력과 전(前) 대통령 세력 모두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당내 패권(覇權) 그룹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이 유례없이 예측 불가능한 선거가 될 만 하다.
정당도 뒤가 구릴수록 말이 많아진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나 마나 한 일'을 골라 해왔다. 새누리당은 집권당으로서 신용을 잃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안(代案) 정당으로 믿어달라고 국민에게 부탁할 형편이 못 된다. 야당을 쪼개고 나와 헌 국회의원을 모아 새정치를 하겠다는 국민의당도 고개를 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다들 부풀린 공약으로 부끄러운 허물을 도배질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공약 가운데 무엇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무슨 재주로 수십조 예산이 소요되는 공약을 정부 정책에 반영하겠는가. 여야가 만들어내겠다는 일자리를 합하면 몇백만개에 육박한다.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사정을 일본만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나라가 일본 말고는 달리 없다. 일본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디플레이션 20년을 몸으로 겪었다. 30년 동안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한국 경제'를 '우리 경제'라 부르는 어느 일본 전문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 경제는 IMF 위기 같은 유동성(流動性)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를 향해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개혁마다 벽에 부딪히고 위기 탈출의 방향도 보이지 않는 게 10년 전 일본과 너무 닮았습니다. 규모가 3분의 1 정도인 현대 자동차 근로자가 도요타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그 바람에 비정규직은 더 어려운 실정에 몰리고 있어요. 한국의 장점이던 스피드와 순발력도 찾아보기 힘드네요." 그는 무모한 강성(强性) 노조만 야단치지 않았다. "일본은 사회안전망이 부실(不實)한데 한국은 그보다 더합니다. 그래서 노조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더 죽자 사자 저항하는지 몰라요."
이 상
황에서 어느 당에 표를 던져야 할까. 위기 탈출은 위기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직한 정당을 골라야 한다. 여야는 정직성 경쟁을 벌일 때다. 빈 공약은 정직하지 않은 증거다. "지난 3년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번에 밀어주신다면 우리 자신부터 확 바꾸겠습니다." 여야 가운데 누가 이런 말을 먼저 꺼낼 수 있을까. 승패를 거기서 판가름 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