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들만의 잔치 국회의원 배지는 기득권으로의 편입 대다수에게는 高연봉 구직 행위… 우린 들러리를 서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디서 듣던 말인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틀렸다. 야밤의 유승민 의원보다 앞서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국민 담화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 힘의 근원은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한 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한 동력이다. 어느 정당 어느 후보자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것인지 신중하게 평가하여 선택해주기 바란다."
담화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맑고 온전하다. 아직 눈에 헛것이 씌지 않았다. 각 정당의 '공천(公薦) 막장극'을 지켜본 우리에게 선거에 적극 참여하라는 당부는 몹시 실례다. 평가 이하 대상들을 놓고 선심 쓰듯 "신중하게 고르라"고 하면 화낼 수도 있다.
우리에게 투표율을 올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당(黨) 정체성 위반 인사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새누리당을 고른다고 치자. 불현듯 이런 궁금증이 꼬리를 물 것이다. 이 당의 정체성은 뭔가. 청년 세대의 조롱처럼 '꼴보수'인가. 정체성은 과거에 고착된 건가, 시대에 맞게 조금씩 전진해가는 건가. 정체성은 가장 힘센 누군가가 위에서 정하는 것인가, 여러 의견과 입장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형성되는가….
우리는 너무 나갔다. 이 정당에서는 보수의 가치가 무엇이고 그 지향점은 어디인지를 놓고 고민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는 걸 잊었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런 게 없어도 늘 '다수당'이지 않은가. 혹시 내부에서 이를 의심하면 "아군에게만 총질" "당에 해악 끼치는 존재"라고 비판받는 당이다.
절대 권력의 친위대가 이 모든 걸 통제한다. 공천 과정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들의 관심은 더 좋은 세상 만들기에 있지 않다. '선거 뒤에 당을 지배하느냐' '차기 대선에서 우리 편이 잡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공천의 칼에 눈이 달린 듯 정확하게 피아(彼我)를 가려냈다. 아주 곤란한 경우에는 "좋은 말 할 때 알아서 제 발로 나가라"는 '호의'도 베풀었다. 조폭 영화에서 본듯한 익숙한 대사가 아닌가. 그 장면에서 책임 있는 당 지도부는 눈치 보며 침묵하거나 타협했다.
이런 정당에서 후보를 내놓기만 하면 우리는 그대로 추인해줘야 한다. 그들만의 잔치에 들러리 서기 위해 우리는 선거에 끌려나와야 하는 처지다. 특히 새누리당 외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영남 유권자들은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포로처럼 됐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더불어민주당을 고르려고 생각했다. '때 묻은' 김종인 대표의 활약 때문이었다. "그는 킹이 될까 킹메이커가 될까" 이런 걸로 화제를 삼았으니까. 그런 그가 불시에 '당(黨) 정체성'의 칼을 맞고는 맥없이 쓰러졌다.
한바탕 '선거용 쇼'에 우리는 또 쉽게 속았다. 그는 '얼굴마담'이었고, 진짜 주인은 1980년대 운동권 이념과 비타협적 강경 노선을 신주처럼 받들고 있었다.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양자 간 타협이 잘됐다. 그는 '비례 5선' 기록을 이뤘다. 대신 우리는 모든 기대를 접게 됐다. 그렇다고 우리의 기대를 국민의당으로 옮겨본들 '새정치'는 간데없다. 공천 탈락자가 당사 앞에서 자결할 각오라며 도끼 시위를 벌였으니 언급 자체가 민망해졌다.
이런 마당에 어느 당에서 몇 명 당선되고, 새로운 인물이 몇 명 바뀐다고 우리 사회와 국민의 삶 무엇 하나 달라질 게 없다. 19대 국회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20대도 앞날이 어떠할지 훤히 보인다.
오직 '그들만의 잔치'인 것은 틀림없다. 국회의원 배지는 기득권으로 편입되는 걸 의미한다. 대다수에게는 고(高)연봉 구직 행위다. 연봉 1억4700만원과 사무실 운영비, 차량 관리비와 주유비, 특권 200가지 등이 기다린다. 사회적 신분 상승까지 단숨에 이뤄진다.
이들 대부분은 임기 동안 '거수기' 역할만 할 것이다. 그런 뒤 기득권을 못 잊어 또다시 공천을 위한 충성 맹세의 줄에 설 것이다. 새누리당 3선에 장관까지 했던 양반이 공천 탈락 충격에 상대 당으로 옮겨 출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려온 기득권을 떠올리면 염치와 명예심은 한 푼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정치 구조를 바꾸려면 우리는 '투표 자판기'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짜놓은 대로만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 저네끼리 내놓은 누군가를 찍어야 하는 선거를 보이콧할 수 있어야 한다. '투표 참여율이 얼마를 넘지
못하면 선거 원천 무효'라는 법률 조항도 만들 필요가 있다.
또 국회의원의 연봉·특권·징계 안건에 대해 국회 안에서 결정을 못 하게 해야 한다. 선거구 조정과 국회의원 정원도 자기들끼리 엿 바꿔 먹듯이 하는 걸 막아야 한다. 이는 국회가 아닌 제3 기구에서 결정하게 해야 한다. 눈앞의 선거보다 이 '형편없는' 정치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가 더 시급한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