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어느 인디음악 기획자의 죽음
입력 : 2016.03.24 03:00
'젊음'의 대명사 된 단어 '홍대'… 그곳에서 실력있는 밴드 키우던
돈은 못 벌지만 일은 재밌다던, 불가해한 에너지 뿜어내던
언제나 명랑하던 그의 어둠을 헤아리지 못한 회한이 뼈저리다
대학시절부터 홍대에서 먹고 마시며 노는 가장 큰 이유는, 거기에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홍대엔 금요일 밤에 쏟아져나오는 20대 청춘도 있고 일요일 낮에 어슬렁거리는 10대 풋내기도 있지만 스스로를 청춘이라 생각하는 30~40대들도 꽤 있다. 그들과 어울리면 여전히 젊은 것 같고 또 실제로 젊어지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홍익대학교 앞'이 줄어 '홍대 앞'이 됐고, 그것도 길어서 '홍대'라고 불리는 곳의 지리학적 위치는 더 이상 홍익대학교 앞이 아니다. 홍대 앞 임대료가 올라가자 상수·합정·연남·망원동으로 확장된 '홍대'는 이제 외국인들도 'Hongdae'라고 부르는 한국의 어떤 문화를 가리킨다. 이제 홍대는 성수동에도 있고 보광동에도 있으며 요즘엔 종로나 문래동에도 생겨나고 있다.
홍대의 젊음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그들의 무모함이다. "성공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하고 싶은 바를 이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하는 밴드 크라잉넛,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끊기자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밴드 아시안체어샷, 고교 때까지 판소리를 하다가 포크 뮤지션으로 변신해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자력 진출한 최고은이 모두 홍대에 있다. 이들 모두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거나 아주 조금 번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올해 모두 마흔 살이 넘었다. 이제 마냥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여전히 그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나 그 재미가 여전(如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친구들 만나는 게 자극이 된다. 그들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그들처럼 살고 싶어 그들을 만난다.
그런 홍대에 기명신이 있었다. 2010년 37세 나이에 문득 홍대에 나타나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매니저를 자청한 뒤 빠르게 홍대의 중요한 기획자 중 하나로 떠오른 사람이었다. 손바닥만 한 홍대 인디음악계도 이런저런 현안 앞에서는 사분오열(四分五裂)하면서 서로 흉도 보고 뒷말도 하지만, 어느 누구를 만나도 기명신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늘 유쾌했고 명랑했다.
'홍익대학교 앞'이 줄어 '홍대 앞'이 됐고, 그것도 길어서 '홍대'라고 불리는 곳의 지리학적 위치는 더 이상 홍익대학교 앞이 아니다. 홍대 앞 임대료가 올라가자 상수·합정·연남·망원동으로 확장된 '홍대'는 이제 외국인들도 'Hongdae'라고 부르는 한국의 어떤 문화를 가리킨다. 이제 홍대는 성수동에도 있고 보광동에도 있으며 요즘엔 종로나 문래동에도 생겨나고 있다.
홍대의 젊음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그들의 무모함이다. "성공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하고 싶은 바를 이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하는 밴드 크라잉넛,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끊기자 카톡으로만 대화하는 밴드 아시안체어샷, 고교 때까지 판소리를 하다가 포크 뮤지션으로 변신해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자력 진출한 최고은이 모두 홍대에 있다. 이들 모두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거나 아주 조금 번다. 크라잉넛 멤버들은 올해 모두 마흔 살이 넘었다. 이제 마냥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여전히 그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나 그 재미가 여전(如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친구들 만나는 게 자극이 된다. 그들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그들처럼 살고 싶어 그들을 만난다.
그런 홍대에 기명신이 있었다. 2010년 37세 나이에 문득 홍대에 나타나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매니저를 자청한 뒤 빠르게 홍대의 중요한 기획자 중 하나로 떠오른 사람이었다. 손바닥만 한 홍대 인디음악계도 이런저런 현안 앞에서는 사분오열(四分五裂)하면서 서로 흉도 보고 뒷말도 하지만, 어느 누구를 만나도 기명신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늘 유쾌했고 명랑했다.
그의 작은 회사 이름은 '러브락 컴퍼니'였다. "인생은 사랑과 로큰롤이 전부다"라는 그의 모토가 담긴 이름이었다. 사랑과 로큰롤이 전부인 인생이란 없기에 그 이름은 확실히 무모했지만 그 이름처럼 홍대 문화를 정확히 보여주기도 쉽지 않았다.
뮤지컬 회사에 다니다가 우연히 록밴드 매니저가 되면서 홍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피해의식, 데드버튼즈, 파블로프 같은 실력 있는 밴드들을 속속 영입했다. 이들 밴드는 미국이나 영국의 페스티벌에도 진출하고 또 해외 기획사와 음반이나 공연 논의도 진척시키면서 홍대 음악계의 대표적인 이름이 됐다. 기명신은 늘 그렇게 말했다. "돈은 못 벌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할 정도예요."
그는 또 홍대에 오면서 "돈을 예전처럼 벌지 못하리란 것은 알았다"고 했다. 돈을 벌지 못할 것을 알면서 홍대에 들어와 일을 벌이는 그 무모함, 그것이 홍대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기성(旣成)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끝내 어떤 불가해(不可解)의 에너지를 뿜어내고야 마는 것도 그 무모함이다.
기명신은 지난 15일 낮 갑자기 숨졌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홍대 전체가 경악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가장 마지막에 손꼽힐 것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빈소는 사흘 내내 북적였다. 다들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하루 종일 빈소 앞에서 서성였다. 듣자 하니 최근 몇 년 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고 했다. 일찍 작고한 부모님의 유산으로 마련해 살던 전셋집을 두 칸짜리 월셋집으로, 그 월셋집을 다시 한 칸짜리 월세방으로 옮겼다고 했다. 세계 최대 인디음악 축제인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매년 한국 대표로 밴드를 보내는 기획사 사장의 처지가 그랬다고 했다. 제작비 단돈 500만원을 빌리려고 수소문했었다는 얘기도 이번에야 알았다.
기명신은 몇 년 전,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했던 일들은 모두 살려고 했던 일인데 지금은 그 반대예요. 죽으려고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음악과 멀어지게 하는 상황이 오면 죽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하니까 하루하루 살겠더라고요." 그를 '음악과 멀어지게 한 상황'이 무엇일까. 습관적으로 홍대에 드나들며 그의 깊은 어둠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 그 회한이 뼈저리다.
뮤지컬 회사에 다니다가 우연히 록밴드 매니저가 되면서 홍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피해의식, 데드버튼즈, 파블로프 같은 실력 있는 밴드들을 속속 영입했다. 이들 밴드는 미국이나 영국의 페스티벌에도 진출하고 또 해외 기획사와 음반이나 공연 논의도 진척시키면서 홍대 음악계의 대표적인 이름이 됐다. 기명신은 늘 그렇게 말했다. "돈은 못 벌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할 정도예요."
그는 또 홍대에 오면서 "돈을 예전처럼 벌지 못하리란 것은 알았다"고 했다. 돈을 벌지 못할 것을 알면서 홍대에 들어와 일을 벌이는 그 무모함, 그것이 홍대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기성(旣成)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끝내 어떤 불가해(不可解)의 에너지를 뿜어내고야 마는 것도 그 무모함이다.
기명신은 지난 15일 낮 갑자기 숨졌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홍대 전체가 경악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가장 마지막에 손꼽힐 것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빈소는 사흘 내내 북적였다. 다들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하루 종일 빈소 앞에서 서성였다. 듣자 하니 최근 몇 년 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고 했다. 일찍 작고한 부모님의 유산으로 마련해 살던 전셋집을 두 칸짜리 월셋집으로, 그 월셋집을 다시 한 칸짜리 월세방으로 옮겼다고 했다. 세계 최대 인디음악 축제인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매년 한국 대표로 밴드를 보내는 기획사 사장의 처지가 그랬다고 했다. 제작비 단돈 500만원을 빌리려고 수소문했었다는 얘기도 이번에야 알았다.
기명신은 몇 년 전, 한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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