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가 20대 국회 들어선 과연 오늘의 엄청난 국가적 위기에 대응할 자질과 태세를 갖출 수 있을까? 19대 국회는 역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렇지 못했다. 20대 국회도 그럴 경우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마지막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 그만큼 4·13 총선은 우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가름할 결정적인 기로(岐路)다. 위기는 두 가지다. 나라의 존립이 걸린 위기, 그리고 먹고사는 일의 위기가 그것이다.
나라의 존립이 걸린 위기란 북한의 핵·미사일이 초래한 위기다. 김정은은 "핵 공격 능력 향상을 위해 이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실험과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탄도 로켓 발사 시험을 단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라면 김정은은 2~3년이면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할래, 아니면 핵 불바다 맛볼래?"라고 선언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어쩔 셈인가? 독자 핵 능력은 물론 없다. 그렇다면 미국·중국·일본 사이에서 일관된 제자리라도 지켜왔는가?
먹고사는 일의 위기란, 성장 동력이 소진되고 미래의 먹거리가 뚜렷하지 않고 일자리가 없어지고 가계(家計)가 파산하는 등등의 문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불황의 터널을 거쳐 가기 위해선 우리 정치권, 사회집단들, 그리고 국민 일반의 정신적 역량이 커야 하는데, 우리가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다. 어려움에 임해서 "모두가 피와 땀과 눈물로 거품을 걷어내고, 부족함을 참아내고, 욕망을 절제하고, 불만을 삭여낼 것인가, 아니면 포퓰리즘, 집단이기주의, 내 몫만 불리기, 네 탓 싸움, 멱살잡이, 쪽박 깨기로 나갈 것인가?" 하는 건 전적으로 그 정치권, 그 사회집단들, 그 국민의 정신적 역량, 즉 교양의 두께에 달렸다. 우리는 그 두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철든 정치권이라면 이 두 초대형 위기 앞에서 김정은의 핵·미사일엔 '거국적 핵(核) 대응 태세'로, 그리고 먹고사는 일의 위기엔 타협과 합의의 정치로 임했어야 한다. 북핵과 불황은 너나없이 똑같이 당하는 재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여당은 리더십이 박약했고, 야당은 반대만 하고 보았다. 국회는 '선진화법'인지에 묶여 꼼짝달싹도 못했다. 이런 정계로는 나라의 존립과 먹고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사명감 없는 '웰빙 여당'과 시대착오적 '운동권 야당' 청소는 그래서 절실한 시대적 과제였다. 그러나 최근의 여야 공천(公薦) 양상은 이 절실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새누리당은 정당한 노선투쟁보다는 조잡한 권력투쟁으로만 일관했다. 대체 어떻게 한 나라 집권당의 선거철 화제라는 게 온통 '유승민 타령'뿐이었나? 그가 시대적인 문제의식과 무슨 일체성이 있다고 온 여당과 미디어들이 자고 깨면 그 이름이었나? 레퍼토리가 그것밖엔 없었나? 친박·비박, 김무성·이한구를 가릴 것 없는 공동의 창피였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특히 비례대표 선정에서 운동권을 내쫓는 듯한 몸짓을 취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그는 고참 운동권과 막말꾼 몇몇은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198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 '알짜'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종인은 비례대표 2번에 셀프공천 했다. 이걸 빌미로 그동안 잠잠하던 운동권이 들고 일어났다. 그만큼 그들은 쉽게 물러서 줄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야 정당들은 이런 불완전한 쇄신 수준에서나마 공천 후유증을 더 이상 끌지 말고 하루속히 쟁점 싸움, 정책 논쟁으로 옮겨가야 한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여야는 왜 여태 이슈 싸움을 하지 않는가? 북한 핵·미사일과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여야의 대책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각자의 답안지를 펼쳐놓고 유권자의 평가를 구해야 한다. 지구 상 가장 긴장이 높고 불황이 엄습한 나라의 선거판에서 안보·경제 논쟁이 일지 않고 있는 건 희한한 난센스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그래서 유권자의 선택이다. 이게 이번 선거에서처럼 막중
한 때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20대 국회야말로 한국 정치 사상 가장 결정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장(場)인 까닭이다. 이 기간에 김정은 폭정의 운명과 자유·인권·문명의 한반도상(像)이 가늠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먹거리 경제의 창출이냐, 그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냐의 결판도 날 것이다. 풍부한 교양의 역량을 갖춘 국민의 위대한 선택이 있어야 할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