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태평로] '학원은 교육 기관, 학교는 평가 기관'

최만섭 2016. 2. 26. 17:15

[태평로] '학원은 교육 기관, 학교는 평가 기관'

박종세 사회정책부장 사진
박종세 사회정책부장

입시가 마무리되면서 다시 확인된 사실은 올해의 숨은 승자 역시 학원이라는 점이다. 도박장에서 도박판을 제공하는 하우스가 늘 이기듯이 매년 선수만 바뀔 뿐 결국 웃으면서 돈을 세는 것은 학원이다. 독재 시절을 제외하고, 사교육과 겨룬 역대 교육 당국은 모두 패했다.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된 수시 전형, 노무현 정부의 수능 등급제, 이명박 정부의 EBS 연계 수능, 현 정부의 쉬운 수능은 모두 사교육을 겨냥했지만 포획에 실패했다. 사교육의 양은 줄지 않고 메뉴만 바뀌어왔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변하면 사교육은 여기에 맞춘 최적화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살아남았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비교과 활동이 중요해지자 논문 작성을 위한 학원, 교내 상 수상을 위한 과외, 자소서 작성을 위한 사교육 선생이 등장했다. 쉬운 수능에 맞춰서는 한 문제도 틀리지 않게 반복해서 시험문제를 푸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가 발표되면 수학 학원이 발 빠르게 마케팅을 강화하는 식으로 진화한다.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오르는 풍선 효과로 사교육비는 한 해 18조원에 이르지만, 현 정부 들어서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줄기는커녕 매년 늘고 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이를 '사교육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관계없이 학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여력을 다 소진한 뒤에야 물러난다는 것이다.

사교육과 전쟁을 벌여 정부가 매번 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 경쟁의 인센티브를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일류대를 나오면 취직이 잘되고 안정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은 한국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또 보내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더구나 대학 입시에 적용되는 냉혹한 실력주의가 그 이후 단계에서는 느슨해져 좀처럼 역전 기회가 없다고 느낀다면 입시에 목을 매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원초적 욕망을 정부는 경쟁 제한을 통해 억누르려고 하니 사교육에 번번이 당하는 것이다. 수능이 쉽든 어렵든, 논술이 있든 없든 남보다 한발 앞서려는 경쟁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기려면 사교육을 끌고 내려오는 대신 공교육이 밀고 올라가야 한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원은 교육 기관, 학교는 평가 기관'이라는 말이 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내신 성적만 매겨서는 사교육을 손톱만큼도 줄이지 못할 것이다. 방학이 끝나면 잘사는 집 아이와 못사는 집 아이의 학력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 공백은 방과 후에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금수저, 흙수저'를 출발부터 고착화하는 세대 물림의 성벽으로 작동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사교육에 내준 공간을 공교육이 되찾아와야 한다. 공주 한일고 등 사교육 없는 교육 현장을 일궈낸 공교육 성공 모델도 이미 있다. 학교에서 자기 주도 학습법을 가르치고 효율적 경쟁이 일어나도록 관리하며 도와준 곳들이다. 학교와 교사가 학원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잘 가르쳐야 사교육과 전쟁해서 이길 수 있다. 학교와 교사를 개혁하는 '공교육 혁명'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교육 개혁은 구호에 그칠 뿐 결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