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수요일마다 '르네상스인(人)'이라는 문패를 달고 문화인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꼭 한 번 초대하고 싶었던 인물이 지난 주말 세상을 떠난 움베르토 에코(84)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트위터 자기 소개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중세학자, 철학자, 기호학자, 언어학자, 문학비평가, 소설가. 단, 르네상스맨은 아님.'
여든 넘어 트위터 하는 이를 만나는 일도 흔하지는 않지만, 그 나이에 이런 유머 감각 유지한 노년을 만나는 게 더 귀하다고 생각한다. 2012년 파리 자택에서 그를 인터뷰했는데, 이탈리아 학자가 파리에 집을 갖게 된 이유를 에코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이 스물에 파리 여행을 처음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구나 싶었지. 그때부터 내 꿈은 파리에서 사는 것이었다오. 어느 정도였느냐면, 은행원이 되어서라도 월급을 모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한 직업이었거든. 그리고 마침내 40년 만에 꿈을 이뤘소. 여기서 중요한 게 뭔지 아시오? 은행에 입사하지 않고도 해냈다는 것."
에코를 추모하며 대한민국 지식인을 떠올려봤다. 그가 다시 '은행원'을 인용하며 유쾌하게 규정한 지식인 개념은 이렇다. "지식인이 머리로만 일하고 손으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은행원이 지식인이고 미켈란젤로는 아닐 거요. 그리고 오늘날은 컴퓨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지."
그는 정치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도 언급하고 있다. "지식인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관해서만 유용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오.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가 현실화된다면 그 나라는 스탈린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
에코의 말이라고 우상화하거나 과대 포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의 계절. 자신을 '지식인'으로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정치인'을 빈번하게 목격한다.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았음을 알리바이로 내세우지만, 정파의 이익을 위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심지어 지역주의까지 조장한다. 좌파건 우파건 예외는 없다. 서로 다른 자리고, 술자리이긴 했지만, 알고 지내던 양 진영 지식인이 같은 이야기 하는 걸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자유주의자는 외로워요. 중도는 설 땅이 없죠. 좋든 싫든 한 진영을 선택해야 발언과 영향력, 자리와 계급을 보장받거든."
다시 에코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당신이 극장에 있는데 불이 났다오. 그런데 시인이랍시고 의자 위로 올라가서 시를 암송하면 되겠소? 지식인의 기능은 미리, 어떤 일을 얘기해주는
것이죠. 즉 극장이 오래되고 낡았다면 그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지식인이 정치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어떤 정당에 가입하거나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서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현재 당면한 일을 하는 건 정치가(!)의 일이라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보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비범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부디 유머도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