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SW 시대'… 소프트웨어 학과 부활
박건형 기자-박순찬 기자
입력 : 2016.02.11 03:05 | 수정 : 2016.02.11 08:43
구글 등 소프트웨어 기업 약진, 앱개발 등 창업할 때도 유용
하도급 구조와 낮은 처우에 한동안 우수학생들 진학 꺼려
최근엔 기계·생명공학과 제쳐… 인문대생들도 대거 복수전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무처 직원들은 지난 연말 1학년 학생들의 전공 선택 신청 접수를 마감하고는 크게 놀랐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소프트웨어(SW)를 배우는 전산학부에 역대 최다인 117명의 신청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KAIST 신입생들은 전공 구분이 없는 무학과(無學科)로 입학한 뒤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과를 선택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산학부를 택한 학생은 매년 50명 안팎에 그쳤다. 총 16개 학과 중 8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신청자가 100명을 넘기며 전체 16개 학과 중 1등을 차지했다. 대기업 취업이나 유학이 쉬워 전통적인 강자(强者)로 꼽혔던 전기 및 전자학부, 기계공학과, 생명화학공학과 등을 모두 제쳤다. KAIST 관계자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은 현재 어떤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며 "소프트웨어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미운 오리새끼의 화려한 부활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끄는 것은 KAIST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상당수 대학에서도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 복수전공·부전공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 공대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 신청자가 처음으로 허용 정원을 넘어섰다. 연간 55명을 선발할 수 있는데 공대는 물론 경영대·사회대·사범대·인문대·농생대·음대·미대 등 전교(全校)에서 107명이 몰려 52명이나 탈락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 신청자는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3년 22명, 2014년 33명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작년엔 급기야 100명을 넘어선 것이다. 전통 인기학과인 기계항공공학부(신청자 20명), 전기·정보공학부(14명), 산업공학과(14명), 화학생물공학부(8명)와 큰 차이를 보였다. 박근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은 "컴퓨터 교육을 받는 것이 창업(創業)이나 대기업 취업, 둘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주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 그래픽=박상훈 기자
고등학생 3학년 수험생들의 학과 선호도를 보여주는 입학배치표에서도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의 약진이 돋보인다. 한양대 소프트웨어 전공, 성균관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계열은 2016학년도 입시에서 의예과 바로 밑에 자리 잡았다. 한양대 관계자는 "불과 3~4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전공은 이공계에서 입학 성적이 중위권이었지만 지금은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배두환 KAIST 전산학부장은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과목은 타과(他科) 학생들까지 대거 모여들면서 강좌를 3~4개씩 추가로 개설하고 있다"면서 "수강신청에 제한을 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창업도, 대기업 취업도 유리"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는 지금까지 '갑-을-병-정' 식(式)으로 형성돼 있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하도급 구조와 낮은 처우, 아이디어를 손쉽게 베끼는 분위기 때문에 우수 학생들이 진학을 꺼렸다. 하지만 최근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의 약진(躍進)과, 창업 붐이 일면서 소프트웨어가 유망 분야로 재조명받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스마트폰으로 음식 배달 주문을 중개하고, 카카오가 모바일 미용실 예약 서비스인 '카카오헤어샵'을 준비 중인 것처럼 최근의 창업, 신규 서비스 트렌드는 기존 산업과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다.
KAIST 전산학부를 졸업하고 전자상거래 벤처기업 로티플을 창업한 이참솔(33)씨는 “실제 창업을 해보면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은 우수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며 “젊은 창업자 대부분은 많은 자본이 필요 없는 인터넷 서비스나 스마트폰 앱(응용 프로그램)에 몰리는 만큼 소프트웨어 인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이런 흐름을 읽고 있다. 2014년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을 시작한 서울대 인문대 중어중문학과 최선웅씨는 “졸업 후 창업을 생각 중인데 컴퓨터공학을 알면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거나, 개발자들과 깊은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KAIST 전산학부 엄유현씨는 “학과 재학생 상당수가 졸업 전이라도 괜찮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자동차·부동산·유통 등 전통 산업도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이 경쟁력으로 꼽히는 만큼 대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 졸업생 선호도도 뚜렷해지고 있다. 2014년 고려대 컴퓨터학과의 취업률은 80%로 학교 전체 취업률(69.3%)을 웃돌았다. 연세대 역시 컴퓨터과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은 80.8%로 학교 취업률(64.1%)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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