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16년 1월 6일

[박두식 칼럼] 김정은만 웃고 있다

최만섭 2016. 2. 10. 11:32

[박두식 칼럼] 김정은만 웃고 있다


입력 : 2016.02.10 03:20

핵·미사일 도발은 北이 했는데 왜 美·中 다투고, 韓·中 틀어지나
좌충우돌 한국 외교 실패가 김정일도 깜짝 놀랄 妄動 부추겨
두려움을 배울 기회 없었던 이 젊은 폭군을 어떻게 막을 건가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진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자가 될 것이라고 가장 먼저 예견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1980~90년대 북한에서 김씨 왕조의 전속 요리사로 13년을 살았다. 그는 2003년부터 '다음 권력자는 김정은'이라는 주장을 폈다.

후지모토씨가 김정은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1월이었다. 김정은과 그의 형 정철을 '왕자'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정철은 '큰 대장', 정은은 '작은 대장'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김정은이 손위뻘 친척에게 '내가 아직도 유치원생인 줄 아느냐'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본 뒤 후지모토씨는 정은을 꼬박꼬박 '대장 동지'라고 불렀다. 김정은이 열 살도 되기 전의 일이다.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면서 후지모토씨는 '난폭한 김정은'이 외국을 떠도는 배다른 첫째 형과 유약한 둘째를 제치고 김씨 왕조의 세 번째 권력자가 될 것이라고 믿게 됐다.

김정은은 농구광(狂)이다. 10대 시절 종종 형 정철과 편을 갈라 농구 시합을 했다. 북한의 남녀 농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두 형제가 직접 뛰는 이 경기에 동원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면 김정은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일일이 잘잘못을 따졌다. 14세도 안 된 김정은이 농구 선수들을 직접 '지도(指導)'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거의 매일같이 예순 살을 훌쩍 넘긴 북한 노동당과 군의 노(老) 간부들이 30대 초반인 김정은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받아 적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북한 권력 서열 2위다. 그런 황병서도 김정은보다 한발 앞서 걷다가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황이 의자에 앉아 있는 김정은에게 무릎을 꿇듯 자세를 낮추고 보고하는 장면도 등장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집권을 도운 후견인이자 친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할 때 내걸었던 죄목(罪目) 중 하나가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 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이다. 리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는 이유 등으로 처형됐다. 이런 김정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제아무리 권력 2인자 또는 인민무력부장이라 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굽실거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현재 북한 안에는 김정은의 폭주(暴走)를 막을 인물이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국제사회도 김정은의 광기(狂氣)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대북(對北)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까지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미국·일본의 경우 대북 제재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김정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북 경고라고 내놓은 '상응하는 대가' '혹독한 대가' 운운하는 외교적 수사(修辭)들은 거꾸로 조롱거리가 됐다.

김정은은 집권 5년 만에 두 번의 핵실험과 세 번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 한국과 미·일의 거듭된 경고와 압박, 유엔 제재, 중국의 설득 그 어느 것도 김정은을 막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도 깜짝 놀랄 도발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 김정일은 집권 직후인 1990년대 중반 대(大)홍수와 뒤이은 식량난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었다. 북이 비핵화 시늉이라도 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김씨 왕조의 창업자인 김일성도 6·25 도발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경험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거의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북한 내에 지하 시설을 만들고 동선(動線)을 극비에 부쳤던 것은 그만큼 안팎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정은에게선 이런 공포와 번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김정은이 올 들어 감행한 핵·미사일 도발은 국제사회가 그에게 두려움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상황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도발한 것은 북한인데, 엉뚱하게도 한·중 관계가 틀어지고 미·중이 충돌했다. 어느덧 각국이 서로 골치 아픈 '북한 리스크'를 다른 나라에 떠넘길 궁리만 하는 모양이 됐다.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한·미·중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해묵은 난제(難題)다. 얽히고설킨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妙策)은 없다. 결국 '북한 체제의 변화'라는 큰 틀에서 긴 호흡으로 풀어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외교는 이 원칙을 잊은 채 좌충우돌하고 있다. 한국의 대북 정책이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서 김정은만 웃고 있다. 이래서는 대북 압박·제재와 대화,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모든 대북 역량을 김정은을 향해 정조준하고, 이 과정에서 김정은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국제 논의 역시 대북 제재 몇 가지를 추가할 것인가 하는 차원을 넘어서 '김정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