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경제포커스] 이재용의 운·둔·근(運鈍根)

최만섭 2016. 1. 27. 11:11

[경제포커스] 이재용의 운·둔·근(運鈍根)

입력 : 2016.01.27 03:00

송의달 산업1부장
송의달 산업1부장
올 들어 우리 산업계에서 눈길을 끈 뉴스가 두 개 있다. 호암(湖巖·이병철 삼성 창업주)이 명당(明堂)으로 꼽아온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건물이 부영그룹에 팔린 것과 삼성전자의 미국 GE가전(家電) 부문 인수 좌절이다. 한 건씩 성공하고 실패한 사례지만, 삼성이 물밑에서 부단한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런 사안의 최종 결정권자는 재작년 5월부터 회장 유고(有故) 상태인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는 'JY(이재용의 약칭)의 명예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아버지 시대와 단절해 가고 있다. 방산(防産)·화학 등 비주력 부문 매각과 자동차 전장(電裝)사업팀 신설 같은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대표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 운영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힘쓰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중요 의사 결정까지 내린다.

거품을 배격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JY 방식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먼저 그룹의 안정적 관리에 치중한 탓인지 홈런은커녕 2·3루타급으로 부를 만한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육성 같은 성공 사례가 드물다는 불만이 나온다. 외아들로서 치열한 후계 경쟁 없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왕자'라는 이미지도 있다. 비우량 기업과 건물 등을 줄줄이 파는 '축소 경영형(型) 리더'라든가, 비용 절감처럼 세세한 데 너무 신경 쓴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이런 지적의 뿌리는 JY가 상대적으로 많은 계열사와 인력을 정리한 반면, 신사업 발굴이 미흡하고 해외 대형 M&A 같은 통 큰 전략적 결정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올해는 이 부회장이 과감한 '도박'을 시도하며 'JY 경영'의 색깔과 비전을 본격 드러내는 원년(元年)이 됐으면 한다. 여기서 JY는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실적 내기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할아버지(호암)의 인생관인 '운·둔·근(運鈍根·우둔하면서도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이 온다) 정신'이 더 절실해 보인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만 봐도 호암의 별세(1987년)로부터 6년 후 신경영에 착수했고, 체질 개선 성과는 10년 이상 지나 가시화됐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으로 대박을 내기 전까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날 정도로 참담하게 꺾였었다. 현대차그룹을 세계 5위 완성차 회사로 키운 정몽구 회장 역시 2000년 이전 현대정공·현대강관 경영에선 특출한 업적을 내지 못했지만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대반전을 일궜다. 이 부회장에게 상처로 남아있는 e삼성 경영이 오히려 보약(補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도 JY의 경영 성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답게 글로벌 경쟁자를 상대 로 미래의 판을 흔드는 큰 싸움에 전력을 쏟았으면 한다. "국가·사회의 진운(進運)에 공헌한다는 신념 아래 새 사업을 개척하고 창설하고 운영해온"('호암자전' 9쪽) 삼성가(家)의 뜻을 세계무대에서 성취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호암의 치밀함과 아버지의 직관을 겸비한 '승부사'가 돼야 한다. 2016년 JY의 담대한 도전과 대변신을 기대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