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5 03:06
[경제교실] '패전시문' 4단계
①패러다임의 변화 파악
②변화 이끌 대응 전략 수립
③전략 실행 위한 시스템 개발
④시스템 극대화하는 문화 창조
커피 문화 선도하는 스타벅스, '패전시문' 승부한 대표적 사례
- ▲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겸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
한때 대형 컴퓨터의 세계 최강자였던 IBM은 개인용컴퓨터(PC) 분야에는 약했습니다. IBM의 실(實)은 대형 컴퓨터, 허(虛)는 PC였던 거죠. '공룡' IBM을 상대함에 애플과 제록스의 대응은 사뭇 달랐습니다. 애플은 IBM의 약점인 PC를 공략해 승자가 됐고, 제록스는 IBM의 강점인 대형 컴퓨터에 맞서다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2. 正으로 대하고 奇로써 승리한다(이정합 이기승·以正合 以奇勝)
맥도널드 창업자 레이 크록은 "남들은 날 햄버거 장사꾼이라 하지만, 난 사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방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방법으로 싸우는 건 정(正)이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는 건 기(奇)의 전략입니다.
맥도널드는 경쟁사들과 햄버거라는 '정'으로 맞서 싸우는 동시에, 목 좋은 길목에 부동산을 확보해나가는 '기'의 전략을 함께 써서 세계적 프랜차이즈가 됐습니다.
◇'우직 전략'으로 부활한 스위스 시계산업
1·2번 전략은 모두 손자병법에 나오는 것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군사 전략가인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인류 최고의 전략서로 꼽힙니다. 병법이지만, 전쟁의 기술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등 고차원의 철학이 담긴 경영 전략서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유용합니다.
손자병법의 여러 전략 가운데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직(迂直)전략입니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우위직(以迂爲直), 즉 돌아가는 길이 실제로 더 빠른 길이 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환위리(以患爲利), 즉 위기를 승리의 기회로 만들라는 겁니다.
- ▲ 혁신적 기업가들은 전략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뛰어나다. 소비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 간파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 새로운 혁신 제품과 기업 문화를 만들어낸 손정의(왼쪽부터) 소프트뱅크 회장,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 /블룸버그·뉴시스
하지만 위기를 맞아 그들은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3가지 기술로 맞선 덕분입니다. 첫째는 금속이나 가죽이 아닌 정밀 플라스틱으로 시계를 만드는 기술이고, 둘째는 다양한 색깔의 패션 감각을 살린 시계 디자인 기술이며, 셋째는 동전 하나 크기에 400여 개 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정밀기술이었습니다.
정밀 플라스틱으로 시계를 만들어 원가를 낮추고, 시계를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어 위기를 돌파한 겁니다. 이전까지 시계는 한 개만 있으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위스 시계회사 스와치는 옷 색깔·취향·유행에 따라 2~3개를 사서 수시로 바꿔 착용하는 액세서리로 시계에 대한 인식을 바꿨습니다. 시계 착용에 관한 소비자 의식과 행동 패턴을 새롭게 만든 거죠. 이후 신(新)개념 시계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자 종래의 고급 기계식 시계가 부활하게 됐습니다. 스위스 시계회사들은 위기를 승리의 기회로 만든 것이지요.
◇'유니크 전략'으로 성공한 사우스웨스트 항공
현대 경영에서 전략의 중요성은 날로 커가고 있습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전체 판세를 읽고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야말로 현대 경영자들에게 필수적 덕목이지요.
기업의 기본 목적인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도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반드시 업계에서 최고가 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쟁자와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최고가 되려는 게 '베스트 경쟁'이라면, 자신만이 생산할수 있는 독특한 방법으로 차별화해 경쟁자를 제압하는 건 '유니크 경쟁'입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지정석·비즈니스석·화물 자동환승 폐지, 동일 기종(737기)만 사용하는 등 '유니크 경쟁 전략'으로 수익성에서 경쟁자들을 앞섰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혁신적 기업가를 '창업가(entrepreneur)'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창업가의 전략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총력전략으로, 성공에 모든 것을 거는 전략입니다. 둘째, 빈 곳 공략 전략입니다. 일본 소니 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 회장은 1947년 미국 벨연구소가 개발한 트랜지스터를 2만5000달러에 매입, 2년 후 미국 라디오 시장을 제패합니다. 셋째 틈새전략으로, 경쟁이 덜 치열한 시장을 찾아 그곳을 집중 공략하는 겁니다. 넷째, 제품·산업·시장의 가치나 특성의 변화를 추구하는 전략입니다. 식당에서 밥을 무료로 주면서 다른 메뉴의 매출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필자는 경쟁 전략의 창시자 마이클 포터 교수와 함께 전승하는 리더의 조건을 '패전시문' 4단계로 정리했습니다. 1단계는 패러다임의 변화 파악, 2단계는 대응 전략 수립, 3단계는 전략 실행을 위한 시스템 개발, 4단계는 시스템의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독창적 문화의 개발입니다.
2011년 미국 포천지(誌) 선정 '올해의 기업인'인 하워드 슐츠 회장이 스타벅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비결 역시 '패전시문' 전략 4단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많은 사람이 집·사무실이 아닌 즐거운 장소에서 최고 품질의 커피를 마시며 이웃들과 대화하기 원한다는 '커피 마시는 패러다임 변화'를 간파했습니다. 둘째, 이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스타벅스를 '인간미 넘치는 친숙한 공간'으로 만드는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셋째, 상점 하나하나 모두 조직에 자생력이 붙은 시스템으로 개발했고, 넷째, 모든 종업원을 파트너로 대우하는 커피업계에서 볼수 없던 독창적 문화를 창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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