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 내리는 눈
오지에 내리는 눈
무거운 짐 내려놓을 한 치 땅도 없는
경계를 무너뜨린 길바닥 더듬는다
눅눅히 찢어진 지폐 주머니에 잠잠하다
수없이 잘린 발목 다독이며 돌아와
그 길 혹 물으면 막무가내 팔 내둘러
갈 길이 다른 사람들만 북적이는 정류장
조바심치는 먼 길 눙치며 내리는 눈
끊겨버린 전화에 안부 더욱 궁금한
끝끝내 닿을 수 없는 천길만길 그 고요
ㅡ이숙경(1966~ )
오지의 눈은 깊이 내린다. 더 희고 적막하게 쌓이고 쌓인다. 일상이 비루해질 때 떠올리는 오지는 그래서 더 순결한 눈의 거처로 그리워진다. '경계를 무너뜨린' 신천지의 매혹으로 사위는 눈이 시리다.
그런 겨울 동해로 뛰어내리는 소낙눈 앞에 선 적이 있다. 산중으로 들어갈수록 눈은 고독으로 푸르고 깊었다. 길을 지우고
그렇게 처마까지 쌓인 눈집에서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동면해보자던 약속이 새삼스럽다. 한때의 취기 어린 말들은 눈석임물로 또 흘러가리라. 쌓아둔 책이나 눈 치우듯 치워가는 겨울 도심의 오지도 괜찮다면서….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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