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3번의 암 선고… 인생은 우환과 시련의 연속
어느 것도 내 죄 때문은 아님을
'희망의 끈 놓는 죄'만 짓지 않으면 나머지는 하늘이 알아서 할것임을
벌써 십오륙 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소위 위장 취업이라는 방법으로 안산의 작은 주물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노동운동, 노동사목의 차원이 아니었다. 나의 인생관, 내 삶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한 객기(?)였다. 주물 공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3D 중의 3D 업종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출근 후 삼십 분이면 먼지 땀 범벅이 된다. 입술과 눈 말고는 온통 다 까맣다. 그렇게 먼지와 땀에 전 작업복은 곧바로 중세 갑옷처럼 딱딱해진다. 오늘같이 추운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갑옷 같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때… 얼마나 선뜩하고 매서운지… 생각만 해도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움츠러든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은 우리 주물반 반장님 생일이었다. 통근 버스에서 내려 그 갑옷 같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심코 인사차 말을 건넸다. "반장님, 생일 축하합니다!" 그러자 그는 차가운 미소를 띤 채 웃기는 소리 작작하라는 듯 내뱉었다. "젠장맞을! 축하? 축하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축하야! 지미XX! 저주받을 날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추운 날 겨울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끔 그때 그가 짓던 차가운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조그마한 키에 햇볕이라고는 전혀 쬐어본 적이 없는 듯한 희멀건 피부, 푸석푸석한 머리칼. 그의 독기 서린 독백은 먼 옛날 '욥'의 독백을 떠오르게 한다.
괜스레 신과 사탄의 내기 감이 되어 그 많은 재산과 명성, 그리고 멀쩡하던 아들 일곱을 순식간에 다 잃고 자신 또한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데 아내는 소리친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 2장 9)
이에 욥은 이렇게 절규한다. "아!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하고 말하던 밤! 그 밤을 저주하여라.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욥 3장 3, 8, 11~13)
그날은 우리 주물반 반장님 생일이었다. 통근 버스에서 내려 그 갑옷 같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심코 인사차 말을 건넸다. "반장님, 생일 축하합니다!" 그러자 그는 차가운 미소를 띤 채 웃기는 소리 작작하라는 듯 내뱉었다. "젠장맞을! 축하? 축하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축하야! 지미XX! 저주받을 날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추운 날 겨울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끔 그때 그가 짓던 차가운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조그마한 키에 햇볕이라고는 전혀 쬐어본 적이 없는 듯한 희멀건 피부, 푸석푸석한 머리칼. 그의 독기 서린 독백은 먼 옛날 '욥'의 독백을 떠오르게 한다.
괜스레 신과 사탄의 내기 감이 되어 그 많은 재산과 명성, 그리고 멀쩡하던 아들 일곱을 순식간에 다 잃고 자신 또한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데 아내는 소리친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 2장 9)
이에 욥은 이렇게 절규한다. "아!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하고 말하던 밤! 그 밤을 저주하여라.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욥 3장 3, 8, 11~13)
언제부터 누가 그런 말을 하기 시작했더냐. "그것은 너의 죄 탓이다. 네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라고. 물론 이 나이 먹기까지, 살아오느라 많이 지었다. 하늘만큼 땅만큼 죄만 짓고 살았다. 죄 없다 하기엔 양심이 너무 걸린다. 하지만 그게 어찌 나만의 탓인가? 신이시여, 그때 내가 죄악 속에 있을 때 당신은 뭐하고 계셨습니까? 나같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놈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임을 진정 몰랐단 말입니까? 왜? 그럴 줄 뻔히 아시면서 나를 그곳에 있게 했고 그리하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왜? 날 이 땅에 내보내시어 이런저런 죄 속에 살게 하십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나 혼자 다 지라고?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이 세월 사는 동안 난 무수한 죄를 짓고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는 능력도 지혜도 현명함도 결단력도 없다.
그러나 난 걱정 안 한다. 그것으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내가 지은 죄, 또 앞으로 지을 어떤 죄도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거나 우환이나 불행을 겪게 된다거나 신으로부터 버림받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60년 넘게 살도록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나이 먹기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앞으론들 있겠는가?
내 인생을 돌이켜볼진대 엄청난 우환과 시련,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지난 3년 동안만 해도 3번의 암 선고를 받았다. 최근에는 손가락도 다쳤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든 사건 사고와 시련과 아픔들은 모두 내가 이만한 존재, 이런 사람으로 날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은총이었을 뿐이다. 얼마 전 나환자 글라라가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신부님, 저의 이 몹쓸 병(한센병)은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제가 만약 이 몹쓸 병을 앓지 않았더라면 제가 어떻게 이 좋은 하느님을 알 수 있었겠어요"라고 속삭이는 그 말이 두고두고 내 차가운 가슴을 녹인다. 그렇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들일지라도 이는 결코 그 어떤 죄에 대한 벌은 절대 아니다. 죽을 이 생명이, 죽지 않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통임을 이제 이 나이 들어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죄, 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죄가 있다면 이는 곧 희망의 끈을 놓는 것, 그것뿐이다. 희망의 끈을 놓는 죄, 이 죄 말고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죄, 내가 책임져야 할 죄는 아무것도 없다. 희망의 끈을 놓는 죄만 짓지 않는다면 그 나머지는 다, 모두 다 하늘이 알아서 할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약속한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죄 속에 살 수밖에 없겠으나 오직 하나 희망의 끈을 놓는 죄, '희망마저 포기하는 죄'만은 결코 짓지 않겠노라고. 와! 새해다! 올해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
이 세월 사는 동안 난 무수한 죄를 짓고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는 능력도 지혜도 현명함도 결단력도 없다.
그러나 난 걱정 안 한다. 그것으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내가 지은 죄, 또 앞으로 지을 어떤 죄도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거나 우환이나 불행을 겪게 된다거나 신으로부터 버림받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60년 넘게 살도록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나이 먹기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앞으론들 있겠는가?
내 인생을 돌이켜볼진대 엄청난 우환과 시련,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지난 3년 동안만 해도 3번의 암 선고를 받았다. 최근에는 손가락도 다쳤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든 사건 사고와 시련과 아픔들은 모두 내가 이만한 존재, 이런 사람으로 날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은총이었을 뿐이다. 얼마 전 나환자 글라라가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신부님, 저의 이 몹쓸 병(한센병)은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제가 만약 이 몹쓸 병을 앓지 않았더라면 제가 어떻게 이 좋은 하느님을 알 수 있었겠어요"라고 속삭이는 그 말이 두고두고 내 차가운 가슴을 녹인다. 그렇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들일지라도 이는 결코 그 어떤 죄에 대한 벌은 절대 아니다. 죽을 이 생명이, 죽지 않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통임을 이제 이 나이 들어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죄, 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죄가 있다면 이는 곧 희망의 끈을 놓는 것, 그것뿐이다. 희망의 끈을 놓는 죄, 이 죄 말고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죄,
그래서 나는 약속한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죄 속에 살 수밖에 없겠으나 오직 하나 희망의 끈을 놓는 죄, '희망마저 포기하는 죄'만은 결코 짓지 않겠노라고. 와! 새해다! 올해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