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테러에 시달렸던 지구촌, 금융·환경위기 또 닥칠 것"

최만섭 2016. 1. 1. 09:51

"테러에 시달렸던 지구촌, 금융·환경위기 또 닥칠 것"

[2016 신년특집] [석학의 눈, 2016 세계] [1] 佛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IS 준동과 中·러의 팽창정책은 칼리프시대
중화제국·옛 소련 등 과거를 향한 치명적인 鄕愁病
청년실업은 모든 나라 시한폭탄… 기성세대·젊은세대 갈등 커질 것

세계적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한때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다. 우리가 맞이할 2016년 새해도 여전히 불확실성의 시대다. 세계 곳곳에선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 글로벌 경제에는 다시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기상이변도 심상치 않고, 중동과 서방세계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뚫고 나갈 석학들의 지혜를 시리즈로 들어본다.

"지금 전 세계는 과거에 대한 '치명적 향수병(鄕愁病)'에 빠져 있다. 극단주의 정치 세력의 준동과 영토 분쟁 등에는 '과거가 더 좋았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2015년 세계는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잇따른 테러와 대량 학살, 극우·극좌 정당의 득세, 동북아시아의 역사 갈등, 미국·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분쟁,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 등 다양한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다. 새해 국제 정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72)는 이런 현상을 '과거에 대한 향수병(nostalgies)'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그는 "IS는 칼리프(이슬람 정치·종교 최고 지도자) 통치 시대, 중국은 중화주의 시대, 러시아는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며 "유럽의 극우주의도 결국엔 옛날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탈리와 지난 28일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 대표와 마이크로 파이낸스(무담보 소액대출) 전문 비정부기구(NGO)인 '플라넷 피낭스' 대표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거실에는 다방면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듯 경제·철학·문학·미술·음악 등 각 분야 책들이 꽂혀 있었다.

파리 자택에서 만난 프랑스 최고 석학 자크 아탈리는 “가난과 재해 등으로 삶이 힘들어지자 이슬람권에선 과거 ‘칼리프 시대’를 동경하는 정서가 확산됐고,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다 극단주의에 빠지게 됐다”며 “IS는 이런 경향이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리 자택에서 만난 프랑스 최고 석학 자크 아탈리는 “가난과 재해 등으로 삶이 힘들어지자 이슬람권에선 과거 ‘칼리프 시대’를 동경하는 정서가 확산됐고,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다 극단주의에 빠지게 됐다”며 “IS는 이런 경향이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순영 프리랜서

―2015년은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시작해서 11월 '파리 연쇄 테러'로 마무리된 느낌이다.

"11월 파리 테러 뉴스는 바로 이 집에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들었다. 나도 친구 한 명을 잃었고, 아들의 친구도 중상을 입었다. 나는 2015년 초 신문 기고에서 대규모 테러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파리 테러' 소식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IS가 어떻게 갑자기 시리아·이라크에서 영토를 확보하고, 유럽을 직접 공격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의 부시 정부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고, 이라크 군대를 무력화시켰다. 그 힘의 공백 상태에서 IS가 탄생한 것이다. 가난과 재해 등으로 삶이 힘들어지자, 이슬람주의 사이에서 과거 '칼리프 시대'를 동경하는 정서들이 확산했고,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었다. 사실 이런 과거에 대한 향수는 이슬람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를테면 어떤 향수를 말하는가?

"푸틴은 러시아를 옛날 소련처럼, 시진핑은 중국을 옛날 중화주의 시대처럼, 에르도안은 터키를 과거 터키 제국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도 옛날 프랑스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또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극단주의에 빠지게 된다. IS는 이런 경향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매우 치명적인 향수병인 셈이다."

―왜 '치명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나?

"미래를 부정하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이웃과 갈등하게 된다. 결국 자기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이 IS 공습에 나섰다. IS와의 테러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것을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로 볼 수 있나?

"이전 테러 집단은 유목민처럼 움직였지만, IS는 특정 지역에 정착해서 세력을 확장하는 특징이 있다. 지속적으로 공격하면, IS는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IS 사태를 '문명의 충돌'로 보는 시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테러집단은 문명이 아니다. 이슬람주의 중에서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탈리가 지목한 새해 국제 정세 3대 변수 정리 그래픽

―IS 사태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면서 유럽도 위기에 빠졌다. 유럽연합(EU)이 해체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영국도 EU 탈퇴를 거론한다.

"유럽의 인구가 총 5억명이다. 올해 유럽으로 들어 온 난민이 100만명 조금 넘는다. 그래 봐야 총 인구의 0.2%에 불과하다. 물론 유럽이 이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수용하기 위해선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영국은 난민 사태 이전부터 EU 탈퇴를 말했었다. 난민은 핑계일 뿐이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정치·경제적 통합력은 더욱 견고해지리라 생각한다. 약 30년 후 EU는 연방제로 거듭날 것으로 본다.(아탈리는 뛰어난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지금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선 아탈리가 2006년 쓴 '미래의 물결'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래 모습을 그린 미술작품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0여 년 전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의 출현을 예견하기도 했다.)

―2016년 국제 정세를 좌우할 변수 3가지를 꼽는다면?

"금융 위기와 환경 위기, 그리고 미국 대선이다. 테러리즘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로 본다."


―이 세 가지를 꼽은 이유는?

"금융 위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국가 부채로 촉발된 위기를 지금은 '그림자 금융(규제를 받지 않는 제2금융권)'과 기업에 일시적으로 떠넘겼을 뿐이다. 2016~ 2018년 새로운 경제 위기가 찾아올 것이고, 그때는 각국 정부로선 이를 해결할 무기도 별로 없을 것이다. 또 과학자들은 올해 엘니뇨 현상(적도 부근 바닷물 온도가 따뜻해지는 것)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 변화는 날씨뿐 아니라 유가(油價)와 가뭄 등을 통해 지정학에도 큰 영향을 준다. 미국의 힘은 이전보다 쇠퇴했지만, 여전히 세계 1위 강국이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세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힐러리 클린턴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남중국해 인공섬 문제에서 보듯, G2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경제성장과 세력 팽창에 집착했지만, 앞으로는 경제의 현대화와 디지털화 등 자신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 중국은 지역 맹주로서 역할은 하겠지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본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세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엔 서로 협조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 대신 앞으로 러시아와 대립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미국은 늘 외부에 적(敵)을 두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전 세계에 걸쳐 청년 실업이 가장 큰 '시한폭탄'이다. 세대 간 갈등 문제는 어떻게 될까?

"아주 중요한 문제다. 기성세대는 힘을 갖고 있다. 출산율이 낮은 선진국에선 기성세대의 힘의 우위가 점점 확고해질 것이다. 반면 후진국은 출산율이 높아 젊은 세대의 힘이 세질 수 있다. 결국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선진국의 기성세대와 후진국의 젊은 세대 간 갈등이 커질 것이다."

[자크 아탈리는]

1981년 이후 모든 佛대통령의 고문 역할… 좌파도 우파도 경청

"프랑스의 모든 정부마다 '아탈리 위원회'가 있다. 이번엔 그가 올랑드의 귀를 잡고 있다."(프랑스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

아탈리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좌우를 막론하고 프랑스 대통령들의 공식·비공식 고문 역할을 하며 프랑스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그에게 경제·사회개혁 관련 특별 위원회를 맡겼다.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도 경제·외교 문제와 관련해 그의 조언을 받고 있다. 1990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설립을 주도하며, 1993년까지 초대 총재를 지냈다.

아탈리는 경제학자이지만,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프랑스 언론은 그를 두고 "미래학, 경제, 국제정치뿐 아니라 심지어 사랑에서도 최고 석학"이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천(千) 개의 삶을 가진 남자'(르 파리지앵)라는 별명도 있다. 지금까지 65권의 저서를 냈다. 새벽 4시에 일 어나 2시간 정도 집필을 한다. 1943년 당시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 아탈리는 프랑스 최고 명문인 폴리 테크니크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ENA), 국립광산학교를 졸업했다. "프랑스에서 시험으로 대통령을 뽑으면 아탈리가 1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미테랑은 "나는 컴퓨터가 필요 없다. 아탈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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