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철학이야기] 제2의 베토벤·비틀스, 여러분도 될 수 있어요

최만섭 2015. 12. 31. 09:53

[철학이야기] 제2의 베토벤·비틀스, 여러분도 될 수 있어요

입력 : 2015.12.31 03:06    글꼴 작게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 비판]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편곡·연주 실력 겨루며
창의적인 것보다 대중성·사업성 중심으로 평가

진정한 예술은 창조라 생각한 사상가 아도르노
예술이 창조성 잃고 돈 버는 수단 될까 걱정했죠

얼마 전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런데 콩쿠르는 클래식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분야에도 있어요. 요즘 부쩍 많아진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지요. 10대들을 대상으로 연예인이 되라고 부추기는 프로그램도 많아 우려를 사기도 해요. 유명한 가수들을 모아놓고 순위를 매기거나, 자격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고 수백만 지원자를 모아 예선부터 서바이벌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최근에 갑자기 많아졌을까요?

시대를 거슬러 아직 콩쿠르가 존재하지 않았던 18~19세기 유럽에 시간 여행을 가보기로 해요. 바흐·헨델을 거쳐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활약하던 당시 유럽은 창조적인 음악가들이 쏟아내는 작품들로 가득했어요. 바로크, 고전파, 낭만파 등등의 음악 조류(음악계의 공동체적인 흐름)들을 중심으로 저마다 창조력을 뽐냈지요. 우리가 아는 클래식 작곡가 대부분이 이 시기에 활동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음악가들은 연주 실력이 아닌 창조성으로 능력을 인정받았지요.

[철학이야기] 제2의 베토벤·비틀스, 여러분도 될 수 있어요
/그림=정서용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클래식 음악의 발전은 주춤하게 되었어요. 무조음악(無調音樂·장조나 단조 등 조성 없이 작곡되는 음악) 등이 새롭게 시도되었지만 대중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어요. 창조적인 작품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기존에 만들어진 곡들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풍토가 점점 우세하게 되었지요. 즉, 콩쿠르는 클래식 음악의 창조성이 한계에 다다른 이후 활발해진 거예요. 새로운 작품이 잘 나오지 않으니까 기존의 작품을 얼마나 더 잘 연주하는지가 중요해졌거든요.

마찬가지로 최근 대중음악 분야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현상은 대중음악의 창조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조일 수 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수의 창조성보다는 얼마나 기존의 곡을 잘 편곡해 연주하는지 평가하지요. 우스갯소리로 비틀스가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으면 떨어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비틀스는 독특한 창조성을 바탕으로 1960년대 영국 록의 대표가 된 대중음악 밴드지요.

20세기 사상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음악이 음악 자체로 평가받지 않고 산업으로 평가받는 것을 대단히 걱정했어요. 요즘엔 문화 산업을 좋은 말로 쓰지요. 그러나 아도르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화는 문화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문화가 산업으로 평가받게 되면 결국 문화는 산업 논리에 종속되어 창조성을 잃고 만다고 보았지요.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모험을 하는 대신 기존의 연주곡들을 잘 연주해서 녹음한 뒤 판매하는 리메이크 음반 사업이나 연주 실력만을 겨루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 예시지요. 문화가 산업에 종속될 경우 창조성보다는 기교와 대중성만을 중시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아도르노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그는 아직 현실에는 있지 않은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술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창조되는 것이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도르노가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한 것도 이러한 비판 정신과 연관돼요. 베토벤은 시민사회의 각성과 변혁을 추구했던 인물이에요. 독일인이었던 베토벤은 프랑스의 낡은 군주제에 맞선 나폴레옹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교향곡 3번의 이름을 '보나파르트'로 정해두었지요. 그러나 후에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자 그에게 바치려고 썼던 헌사 부분을 찢어버리고 교향곡 3번의 이름을 '영웅'으로 바꿔버렸지요. 베토벤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평등을 실현해줄 역사적 영웅을 염원했어요. 베토벤은 작곡을 통해 그 당시 시대를 비판하면서 자유·평등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요. 아도르노는 베토벤처럼 세상을 비판하고 창조적인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를 높게 샀어요.

그렇다고 해서 문화 산업을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콩쿠르를 통해 수준 높은 악기 연주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들의 재미있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어요. 예술이란 엄청난 노력과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활동이기 때문에 표현력을 겨루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요. 그러나 자칫하면 연주 실력을 겨루는 데에만 몰두하다 창조성을 중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예술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역시 나쁜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예술 활동을 하는 목적이 '오로지' 돈을 버는 것이 된다면 아도르노가 염려했던 것처럼 진정한 예술을 창조할 수 없어요. 기존의 음악을 즐기고 연주 실력을 겨루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나은 음악을 창조하고 현 상황을 비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것이 바로 아도르노가 주장했던 참된 예술의 길이지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
/조선일보DB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1903~1969·사진)가 만들어낸 유명한 명제예요. 여기서 시는 '서정시'를 뜻하고, 아우슈비츠는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말하지요. 즉, 인종 학살이 일어난 뒤 아무렇지 않게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시를 쓸 수 없다는 뜻이에요. 아도르노는 나중에 이 발언을 취소했지만 독일의 과오에 대한 그의 비판 정신을 짐작할 수 있지요.

아도르노는 독일이 아직 히틀러 치하에 있었던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해요. 상업주의·대중문화가 발전하던 미국에서는 문화 산업을 비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