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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종업원 피눈물 뽑는 '시한부 면세점' 끝내 고집할 건가

최만섭 2015. 12. 23. 10:43

[사설] 기업·종업원 피눈물 뽑는 '시한부 면세점' 끝내 고집할 건가

입력 : 2015.12.23 03:22

5년짜리 시한부 면세점 허가를 받아 연내 영업을 시작하는 시내면세점들이 아직 매장을 다 채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서울 여의도 매장을 공개한 한화갤러리아는 내주 문을 여는데도 40%가 비어 있다. 서울 용산의 신라아이파크 면세점도 24일 전체 매장의 60%만 문을 연다. 해외 명품업체들이 입점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업체들은 최근 "멀쩡히 영업하는 면세점을 정부가 5년 만에 문 닫게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서한까지 관세청에 보냈다고 한다. 이런 훈계나 듣는 정부가 한심하다.

허가가 취소돼 멀쩡한 매장을 문 닫는 업체들 사정은 훨씬 딱하다. SK 워커힐 면세점과 롯데 월드타워면세점은 내년 상반기 문을 닫을 때까지 할인 행사로 최대한 물건을 팔아치우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고 한다. 두 회사는 면세점 매장을 꾸미는 데 투자했던 수천억원을 앉아서 날릴 판이다. 그보다 2000명 가까운 종업원들은 하루아침에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일부 종업원들은 관세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면세점 허가를 5년으로 제한한 법규정에 있다. 3년 전 국회는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해주던 면세점 면허 기간을 5년으로 줄였다. 재벌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야당이 법안을 밀어붙이자 정부와 여당은 순순히 물러섰다.

우리나라 면세사업은 매출의 80%를 롯데와 삼성 계열의 신라가 독점해왔다. 이런 독과점을 풀려면 면세점 허가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영세사업자, 대기업 등 누구나 면세점을 할 수 있게 해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한부 면허를 재벌 몇몇에게 나눠주고는 "독점이 덜해지지 않았느냐"며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달콤한 규제 권한을 끝까지 쥐고서 재벌들을 줄 세우며 로비·향응이라도 계속 즐기겠다는 심사인 듯하다. 관료들의 탐욕과 정치권의 포퓰리즘 탓에 안 그래도 후진적인 면세점 정책이 나아지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새로 면허를 받은 기업들도 문을 열기도 전에 5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요국들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있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불합리한 정책 변경이나 법 때문에 피해를 받으면 국제기구 중재를 요청하는 제도다. 외국계 면세점이 국내에 투자했다가 문을 닫게 됐다면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당장 수천억원씩 피해를 보면서도 보상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는 갑자기 정책이나 법이 바뀌어 기업이 손해를 보면 보상을 청구하는 법규정이 있다. 시한부 면세점 같은 엉터리 정책으로 기업과 종업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기업들이 돌연한 정책 변경으로 입은 손실을 정부에 보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규정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종업원들도 정부가 구제하도 의무화해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