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문 등

[사설] '美·中 사이 편들기'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최만섭 2015. 11. 6. 11:15
  • [사설] '美·中 사이 편들기'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4일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남중국해에서의 항행(航行)과 비행의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한 장관은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며, (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이 체결한)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이행과 함께 행동수칙(COC)의 조기 체결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미·중을 포함한 18개국 국방장관이 모인 자리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영유권 주장에 대해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내세워 강하게 반대해 왔다. 한 장관의 발언은 이 같은 미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간 국내외 일각에선 한국이 미·중 사이에 끼어 있다는 식의 인식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중이 강대국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도 중간에 끼어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는 벗어난 지 오래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도 국익을 훼손하는 자해(自害)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입장은 어떤 경우에도 한쪽 편들기가 될 수 없으며, 국익과 국제 원칙, 세계 공론(公論)에 따른 독자적 판단이어야 한다.

미국이 동맹 관계를 앞세워 압박하더라도 우리 국익과 국제 규범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곤란한 것이고, 아무리 중국이 특별한 경제 관계를 내세워 요구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남중국해 산호초와 모래톱에 흙과 콘크리트를 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영토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중국이든 필리핀이든 다른 어떤 나라든 온당치 않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인공섬과 시설·구조물에 대해서는 영해를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은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인도·암초 등에 대한 주민 상주화 및 시설물 설치 행위를 자제토록 하고 있다. 중국도 서명한 문서다. 한 장관이 밝힌 우리 입장은 이 같은 국제 규범과 합의에 근거하고 있다.

더구나 남중국해는 우리 국익과 직결돼 있다. 작년 한 해 남중국해를 오간 우리 국적 선사의 컨테이너 물량은 6만7121TEU (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 수출입 물동량은 4억8000만t(전체 물동량의 40%)이었다. 원유 수송량도 전체의 95%인 1억2600만t에 달했다. 남중국해에 문제가 생겨 선박이 우회하게 되면 수송에 이틀이 더 걸리고 수송 비용도 급증한다. 어느 나라든 그곳에 인공섬으로 해·공군 기지를 만들어 다른 나라의 주요 해상 통로를 영향권에 두려 한다면 우리 국익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오는 15~16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18~19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1~22일 동아시아정상회의 등에서도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필요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외교적 고려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익과 국제 원칙·규범·공론을 벗어나면 누구의 존중도 받지 못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