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폴크스바겐이 주는 警告

최만섭 2015. 10. 23. 09:21

폴크스바겐이 주는 警告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사진
이인열 산업1부 차장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의 충격 중 하나는 '신뢰의 대명사였던 독일 기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사회의 문제점, 이전투구를 벌인 대주주들의 민 낯 등만 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또 하나의 궁금증은 그런 문제점을 가진 기업이 어떻게 세계 1위까지 올랐느냐는 것이다.

사실 세계 1위와 정직성 같은 문제는 애초부터 상관이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문제점들이 일정 기간은 성장 동력 역할을 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버렸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안드레 스파이서 런던시립대 교수의 진단은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의 자리 보존과 높은 연봉을 위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경우도 정부의 탄소 배출량 감축 요구, 소비자들의 값싸고 강력한 힘을 가진 차량 요구, 투자자들의 높은 수익 요구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겠다는 불가능성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 CEO는 불가능성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속임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대신 하위 경영자와 기술 개발 엔지니어들에게 무언(無言)의 압력을 전달할 뿐이다. 이번 사태도 해결책을 못 만들면 상부에서 화를 낼 것을 두려워한 엔지니어들이 결국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좋은 결과만 보고하려다 조작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빈터코른 전 폴크스바겐 CEO는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그런데 기자는 사태의 원인 못잖게 사태의 본질에 눈길이 간다. '폴크스바겐 조작 게이트'는 결국 자동차 업계의 무한 경쟁에서 출발했으며, 그 핵심은 가격 경쟁이다. 폴크스바겐은 환경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런 기술력을 적용하면 차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걸 피하려고 속임수를 썼다.

세계적 자동차 시장 조사 기관인 JD파워의 랭킹은 최근 들어 매년 수시로 변한다. 그만큼 업체마다 기술적인 평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술력의 차이가 없으니 빼어난 디자인이나 가격이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

폴크스바겐은 아우디, 벤틀리 등을 거느린 세계 1위의 자동차 그룹으로 브랜드 가치 역시 최상급이다. 여기에 모범적인 노사 문화로도 유명하다. 1990년대 이 회사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해외 생산 증가로 존폐(存廢) 위기에 몰렸으나 노사가 근로시간 유연화 등을 통한 구조조정에 합의하면서 위기를 극복해냈다. 2014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폴크스바겐의 1인당 인건비는 9062만원으로 현대차(1인당 9700만원)보다
적다. 기업 경영에서 인건비 부담을 측정하는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현대차는 12%가 넘는데, 폴크스바겐은 10%에 불과하다.


불편한 얘기지만 현대차는 기술력에서 결코 폴크스바겐을 앞질렀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인건비는 더 비싸니 경쟁력은 뻔한 일이다. 폴크스바겐을 지켜보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떠올리는 것은 기우(杞憂)일까. 제발 그랬으면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