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문탐방 : 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정 창 래

최만섭 2015. 10. 5. 13:26

                      동문탐방 : 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정 창 래

1. 성명 : 정창래-1954 년 5 월 13 일생 (만 60 세)

의정부 중학교 20회

 

2. 학력 및 경력

*학력

1970. 02-의정부 중학교 졸업

1973. 02-유한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

1974. 03-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1981. 02-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력

1981. 02 -조흥은행 입사

1997. 02-조흥은행 의정부 지점 성모병원출장소장

1998. 10-조흥은행 도봉지점장

2000. 03-조흥은행 면목남지점장

2002. 03-조흥은행 마산창동지점장

2004. 03-조흥은행 종로지점장

2006. 09-신한은행 이대역지점장(조흥은행과 신한은행 통합)

2008. 01-신한은행 인사부소속 조사역

2009. 12.31-신한은행 퇴직

2010.04-현재-광적농협 상임이사

 

*사회 및 문화 활동

1992. 10-문화유적답사동우회- 조직

1997. 02-조흥은행 100년사 발간(대표집필)

1998. 02-의정부문화원연구위원, 의정부중고60년사 준비위원

2009. 04-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경인지회 간사

2010. 04-30-현재-서울중구문화원 자문의원

2010. 01-현재-양주문화원 연구위원 및 양주 시 문화대전 집필 워원

고대사학과교우회 수석부회장

2013. 01-4년 임기-양주 문화원 이사

2014. 01-2년 임기-의정부중공업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휴대전화 : 010-9271-9471

Email : jcr513@hanmail.net

 

3. “오도제세(吾道濟世)-사람이 사는 도리”는 내 삶의 좌우명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한 생각은 늘 인생을 진지하게 접근시킨다.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정답도 없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도 아니다. 늘 머리와 가슴에 담지 않으면 갈 길을 잃을 것 같은 조바심으로 전전긍긍하는 문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인생을 끊임없는 여행길에 비유한다. 자고 일어나봐야 일정을 알 수 있다. 어제는 지나온 길이고 오늘은 어제의 산물이고, 내일은 앞으로 가야할 길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산에 오르다가 잠시 뒤돌아서 지나온 길을 바라다 본 적이 있다. “인생길이 이렇구나.” 이었다. 이전의 내가 저기에 있었고 걸어 올라온 내가 여기 있고, 저 꼭대기 정상에 앞으로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 이후론 늘 그렇게 해본다.

 

 사람마다 가는 길도 각각이다. 잘 닦여진 넓은 대로를 가기도 하고 전혀 발 닿지 않은 가파르고 험난한 산길을 가기도 한다. 혼자 가는 길도 있고 함께 가야만 하는 길도 있다. 평탄한 길을 가다가도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 받기도 하고, 스스로 빠져나오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런 여정이 바로 인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숙명적으로 태어난다. 어느 시기, 어느 나라, 어느 곳에 누구란 존재로 만들어진다. 주어진 환경에 지배를 받지만, 자신의 의지로 전혀 새로운 길을 가기도 한다. 좋고 나쁘고 는 양면의 동전과 같고 행복하고 불행도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그 크기나 양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런 마음 그런 여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바로 오늘의 ‘나’이다.

 

1984년 파키스탄 국경 부근 난민 캠프에 카메라를 멘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예술 건축학을 전공한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였다.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에 실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아프간인 들의 비극과 아픔을 잘 나타내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맥커리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탐험하고 인생을 즐기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현재를 사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쟁과 에이즈 등 인간이 겪는 고통과 처절함은 슬프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 인생은 어려움과 투쟁으로 가득하다. 그걸 견뎌내고 살아나가야 한다. 그게 삶이다.” 그렇다. 인생은 끊임없이 맞추어 나가는 퍼즐과도 같다. 순간순간이 소중한 퍼즐 한 조각이다. 그러나 꼭 완성되어야 할 퍼즐 게임이 인생은 아니다. 정해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중요한 것이 내 자신이다. 시간과 경주를 벌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던지는 것도 인생은 아니다. 조금 늦게 가면 어떠랴. 조금 부족하면 어떠랴. 가다가 들꽃 향기도 맡아보고, 가다가 파아란 하늘에 양떼구름도 보고, 서녘바람 냄새도 맡아 보면 어떤가? 주변에 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하고, 남아있는 것 모두를 준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근본적인 의구심에 봉착할 때마다 나는 공자님이 말씀하신 오도제세(吾道濟世)를 생각한다.. 오도(吾道)는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었다[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공자는 종교적 설법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길을 제시한 사람이다. 공자의 도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오도(吾道)는 바로 우리의 오도(吾道)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사람 도리를 하면서 서로 사람답게 대접하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살아갈 때, 이 세상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오불가장(敖不可長) :

오만한 행동은 키우지 말라. 체면있는 사람은 직접 미워하지는 않지만, 돌아서서 다시 보기 싫어한다.

 

욕불가종(欲不可從) :

좋은 물건 다 가지려 하지 말라.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져도 끝내는 만족하지 못한다.

 

지불가만(志不可滿) :

뜻을 가득 채울 수는 없다. 모든 사업, 명예, 출세가 좋은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은 부족한데, 감투만 큰 것을 쓰면 끝내는 눈앞이 가려져 패가망신한다.

 

낙불가극(樂不可極) :

즐거움도 한도가 있어야 한다. 끝도 없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인생은 고락의 연속이니 괴로움을 이기는 능력도 길러 놓아야 한다.

 

재무구득(財毋苟得) :

재물은 구차스럽게 얻지 말라. 뇌물이나 사기를 쳐서 얻은 재물은 죄악이다.

 

난무구면(難毋苟免) :

어려움을 당했을 때 체면을 구겨가면서 면하려고 하면 세상 인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한무구승(狠毋求勝) :

사람답지 못한 사람과 다투어 이기려고 하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

 

분무구다(分毋求多) :

여러 사람의 몫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고 혼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 한다면, “나는 이렇게 못난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 밖에 안 된다.

 

4. 아버지는 내 마음의 고향

나는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섬말의 30여 호 조그만 마을에서 다섯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님은 세 형제의 막내, 큰 아버님이 일제강점기에, 어렵사리 서울로 유학하여 전문학교를 졸업하신 후, 공무원이 되어 도시에서 근무하시고, 결국 아버지께서 대를 이어, 농업에 종사하셨다. 당시 벼농사 외에 주요 밭작물은, 참외나 배추, 무, 파 등이었다. 당시는 빗물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기에, 항상 일손이 딸렸고, 학교 다니는 기간에도 방과 후나 일요일 등 여가시간은,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어떤 경우는, 학교를 빠지고 참외를 직접 팔러 가야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웃 형들과 함께, 짐을 실은 트럭을 타고, 서울 미아리고개 너머 있는 돈암동시장에 가서, 밤을 새운 일도 기억된다. 그 당시 가난은, 누구나 겪는 일상이었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농사일로 많은 식구들의 생활을 끌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집 두 집 식구들과 우리 집식구를 합한 대가족인 관계로 가정 형편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농사일 별도로 미군공병대 군 생활 경험을 살려 목수길 로 나서, 인근 동네 집들을 짓는 일에도 종사하셨다. 늘 바쁘게 움직이신 걸로 기억된다. 그러나 돈벌이가 약해지자 소장수 길에 나섰다. 성실하고 근면한 성품의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당시 소는 농촌에 있어 농사일에 중요한 도구였고, 재산 목록 제1호의 큰 자산이었다. 소 매매에 있어는 눈짐작으로 무게를 가늠했고, 가격이 소장수의 눈짐작으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때로는 부정확한 경우가 생겼고 소장수는 손해를 보거나, 폭리를 취했다. 폭리인 경우 아버지는 늘 소를 판 농민을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일정 금액 이상은 되돌려 주었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 갔고, 소를 팔 때쯤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 시기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과정에서 아버님으로부터 제동이 걸렸다. ‘공부시키면 고향을 버리게 된다.’, ‘장남은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지론으로, 학교를 안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견지명이 있으셨다. 물론 할아버지와 고생해서 큰아버지를 최고학부까지 뒷바라지하고 얻은 교훈이셨다. 고민 끝에, 내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유일한 박사가 장학금 지원으로 학비를 면제해 주는, 유한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다. 거주처가 문제였다. 가장 싼 곳을 찾아 학교에서 4키로나 떨어진 산사(원각사) 밑에 있는 고시촌의 한 칸짜리 방을 얻었다. 나중엔 매일 굶다시피 하는 자취 생활을 안타깝게 여긴 할머니와 어머니의 노력으로 하숙으로 전환했다. 한 달 하숙비가 쌀 네 말 값이었다. 한 친구와 함께 중2~3생들을 과외지도를 했다. 수학과 과학은 내가 맡고, 한 친구는 영어와 국어를 맡았다. 하숙비의 반은 조달되었다.

 

유일한박사는 유한양행을 설립하였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강조하고 유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한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다.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이 필수”라 생각하고, 1964년 유한공고를 설립, 전교생에게 3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그 혜택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1학년 재학 중 별세하여 모교교정에 모셨다. 유일한박사는 나에게 나라와 삶의 가치를 진정으로 일깨워 주신 분이다. 지나온 인생길에서 강한 빛으로 항상 앞길을 비추어주셨다.

 

고시촌에 입주한 고시생들의 도움으로 독학이 가능했다. 잠을 5시간 정도로 줄이고 대학진학을 준비하였으나, 서울대 입시에 실패한 후, 6개월여 우리나라 전국일주의 무전여행을 떠났다. 무전여행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해주었다. 엄청난 고생이었지만,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쌓았던 시기였다. 돈이 없었기에 하숙할 때 익숙해진 사찰을 찾아 숙식을 해결했다. 문화재 보고인 사찰은 우리나라 역사에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스님들과의 대화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입시에서 전공을 완전히 바꾸어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들어가서도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출발한 무전여행은 4~50여 일씩 삼년간 계속되었다. 우리나라 곳곳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로부터 체득한 지혜와 지식은 나의 삶에 중요한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혼탁한 시절, 자유 정의 진리를 뿌리내리게 하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는다는 지성과 야성의 나무를 가슴 깊게 심는 계기가 되었다. 올곧은 민족혼과 불굴의 개척정신을 함양했던 고대 재학시절은, 평생 짊어지고 갈 가치관을 굳게 만들어 주었던 시기였다.

 

5. “문화유적답사동우회”는 역사(歷史) 사랑의 분신

대학졸업 후 조흥은행에 입행하여 19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이며 기업인 조흥은행의 ‘조흥은행100년사’ 발간의 중책을 맡아 3년 반의 각고 끝에 편찬했다. 또한 세계 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最古법인이자 현존하는 국내 最古의 민족은행으로 공인을 받게 하였다. 1999년에 도봉지점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점장으로 10여 년 간 5개 영업점을 경영했다. 재임 중인 1992년도에는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문화유적답사동우회’를 조직, 최근까지 20여 년간 답사여행을 추진했고, 은행 직원과 고객, 학교동문회원 등의 전폭적인 호응을 받았다.

 

또한 서울중구문화원 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신한은행 퇴직 후 고려대 교우회 사무국장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0년부터 광적농협에서, 금융 및 문화마인드를 겸비한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동안 경험하고 쌓아온 지식과 능력을, 고향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농촌사회는 FTA, 쌀시장 개방 등등 우리나라 농업이 피폐되어가는 형국이다. 농민조합원이 잘 살아야 직원도 잘 살고 온 국민 모두가 잘 사는 것이다. 앞으로 신토불이 공존공생의 길을 가는 조합의 숭고한 뜻이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다. 2011년부터 2년간 모교인 가납초교 총동문회장으로 동문회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곳에서도 연 2회 역사문화탐방 행사를 시작하여 매년 추진하고 있다. 몸담고 있는 곳 어디서나 문화탐방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에의 접근과 다른 지역의 여행은 우리 삶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고차원적으로 넓혀주는 최상의 방안임을 믿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아는 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6. 귀향(歸鄕)의 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양주시는 의정부시, 구리시, 동두천시, 남양주시가 독립·분리되고 서울로 편입되면서, 면적 등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조선말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군으로서 그 역할도 컸지만, 인구가 70만에 가까웠던 곳이다. 현재 인구는 20만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경기도내 19번째 크기다. 오랜 된 역사와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한 ‘멋’과 ‘흥’의 역사문화도시이며, 수려한 자연환경과 경기북부 물류ㆍ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직도 더욱 풍성함을 갖추어야할 미래가 보장된 도시이다.

 

통일신라를 구축하기 위해 대당전쟁의 중심지였던 양주대모산성이 2013년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었고, 우리 역사상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던 유양리(옛 양주의 중심지)는 양주목관아지 복원을 기다리는 중이다.

 

두 문화재의 복원과 고구려 보루성이 아홉 개나 있는 불곡산과 연계 복원되고, 발굴 작업이 끝난 회암사지와 함께 교외선 재운행과 3,7호선 전철 연장으로 서울과 연계되고, 사패산과 도봉산, 북한산을 연계하는 산악철도나 케이블카가 구비된다면 세계명소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문화재복원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싶다. 자기 조국, 자기 고향을 사랑하고, 지나온 역사를 소중히 가꾸고 키워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많은 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고 잘 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7. 왜 정창래 인가?

인간은 육식(六識)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육식은 눈,귀,코,혀,몸 및 의식(意識)을 포함하여 인간의 육체가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불교(佛敎)에서는 “육식”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팔식(八識)`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팔식은 다른 말로 “갈무리한다.”라고 해서 장식(藏識), 혹은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해서 무멸식(無滅識) 이라고 한다. 팔식은 육식에 의해 훈습(熏習)되어온 온갖 것들이 갈무리 되어 저장되는 곳이다. 그래서 팔식은 속마음, 심층의식 등으로 불린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속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한 순간에 생성되고 없어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 동안에 육식으로 인식한 희로애락(喜怒哀樂) 및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등의 모든 감정적 경험이 쌓여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의 감정 및 사고의 역사 인 것 이다.

 

내가 정창래에게 나의 두 번째 동문탐방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간청한 것은 이력서에 나타난 그의 학력과 경력뿐만이 아니라 정창래의 `팔식(八識)`을 끄집어내어 그려보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도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에 흐르는 속마음(심층의식)은 맑고 깨끗하여 거친 세파에 쩌들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내가 바라본 정창래는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났으며 진지하고 생각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사려 깊은 지성인(知性人)이다. 나는 정창래가 가진 몇 가지 덕목(德目)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가). 진지함

요사이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모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회사에 근무하는 사원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타사보다 비교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어떤 사람이 우수한 사원일까? 첫 번째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조직에서 어떤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추진해야 하는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업무 성과를 극대화 할수 있다는 것이다.(WHAT)

 

둘째는 어떻게 그 과제를 수행하느냐의 방법론에 대한 이해이다. 소위 말해서 노하우(KNOW-HOW)-라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왜 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 하는 그  당위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 WHY). 우리는 왜(WHY?)라는 진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대는 사려 깊은 젊은이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정창래는 역사를 전공한 인문학도 이면서도 근 28 여년을 우리나라 굴지 은행인 조흥은행(신한은행)에서 지점장등을 역임하면서 금융업계에서 아주 중요한 업무를 훌륭히 수행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왜(WHY?)를 늘 가슴에 담고 진지한 자세로 세파를 헤쳐가나는 마음이 따뜻한 전문 경영인인 것이다.

 

나) 선함

모 은행에서 광고 업무를 담당하는 중견 간부는 최고의 광고 모델로 개그맨인 “유재석”을 꼽았다. 그 이유는 심성이 올바르지 않은 연예인과 광고 계약을 맺고나서, 만약 그 연예인인 스캔들을 일으킨다던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 그 광고효과가 감소되기 때문에 광고 모텔과 계약을 맺을 때 최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은 심성(心性)이 선(善)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善)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 할 까? 이 세상에는 선(善)에 대한 정의가 무수히 많지만, 성인(聖人)들이 이야기한 선(善)의 공통점은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고 “공유” 하려는 행위이다-(SHARE).

 

정창래는 고향 농업협동조합의 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우리”와 “공유” 라는 선(善)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항상 마음속으로 협동조합 정신과 상통되는  “분무구다(分毋求多)- 여러 사람의 몫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고 혼자서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 한다면, “나는 이렇게 못난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 밖에 안 된다.“를 수없이 되뇌고 있는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다) 진정성

나는 모 신문에 실린 다음 기사를 읽고서 진정성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배우 김보성을 모델로 내세운 팔도식품의 ‘비락식혜’ 광고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5월 7일 유튜브에 선보인 이 광고는 3일 만에 150만 조회 수를 돌파한데 이어 일주일 만에 조회 수 200만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거 한다. 이 광고가 공개된 5월 7일을 기점으로 전후 5일 동안 편의점 CU의 전국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편의점에서 많이 팔리는 비락식혜 캔제품의 경우 매출신장률이 69.2%, 컵제품은 63%를 기록했다. 이밖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된 비락식혜 매출은 48.3% 증가했고 롯데수퍼도 21%나 증가 추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김보성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나 손해가 되나 따지지 않고 진정성 있게 의리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고 소비자 들은 그의 진정성을 믿어준 결과로 상당한 매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김보성의 광고 효과는, 이 시대의 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 -가  갖추어야할 덕목에 진정성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진정성이란 득실(得失)을 따지지 않고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도 자기의 소신(所信 )을 적어도 10년 이상 지킬 때 비로소 입증되는 것이다.

 

정창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나라 사랑의 첩경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문화유적답사동우회 등을 조직하고 역사문화탐방 행사를 현재 까지 20여 년간 지속하고 있다.

 

8. 끝맺는 말

정창래와 동문탐방을 완성해 가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주제는 항상 “진정성”이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천상병 시인이 생각하는 “진짜 시와 가짜 시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정창래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를 읽고 짜증을 낸다면 그 시는 가짜입니다! 나는 이런 시는 쓰지 않겠습니다. 되도록 인생의 참뜻을 알리려고 하겠습니다."

 

 

작성/정리- 최만섭 시인/수필가

1953년 8월 7일 생

의정부 중학교 졸업(20회) -의정부 종합 고등학교 보통과 회원(24회)

월간 한비문학 수필부문 등단(2006년 6월)

제2회 한비문학상 작가협회 수필부문 본상(2006년 12월 2일)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시부문(2007년 5월)

월간 한비문학에 문인 이야기 집필

(주)통인 인터내셔날 해외 사업부 부장

(주)승 인터내셔날 해외 사업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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