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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자유라는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최만섭 2022. 8. 26. 05:11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자유라는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취임사 35회, 광복절땐 33회 ‘자유’ 언급했지만
윤 대통령, 확고한 자유의 로드맵 제시엔 미흡
북에 경제적 지원 같은 실용적인 제안에 앞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유·인권 문제 언급했어야
위기였던 자유 살리라고 국민이 정권교체한 것

입력 2022.08.26 03:00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에 진심인 것 같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 언급한 데 이어, 제77회 광복절 축사에서도 33번 말했다. 연설문 내 최다 빈도다. 대통령은 또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이었다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유를 찾고, 지키고, 확대하는 과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행사 슬로건에도 ‘되찾은 자유’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렇게 소중한 보편적 가치를 일깨우고 강조하는 대통령이 당선 후 100일도 되지 않아 지지율이 반 토막이 난 건 미스터리다. 교육부 장관 인사가 문제라고 하지만 전 정부 교육부총리는 위장 전입(교육에 민감한 이슈인!)에도 불구하고 임명되었고, 어설픈 정책 탓이라고 하지만 성과를 논하기엔 너무 이르다.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이나 대통령실의 소통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으나 그건 껍질이지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의 김여정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냥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낮은 지지율이다. 대체 왜?

/일러스트=이철원

대통령을 향해 각종 조언과 쓴소리를 한 근래의 언론 칼럼들을 메타분석하고, 주변의 인사들에게 인터뷰를 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분석들이 도출되었다. 우선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자유 추구의 일부로 본 것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이 있었다. 자연히 그들은 일본과의 미래 지향적 관계 개선에도 부정적이다. 독립과 자유는 사실상 동의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독립 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를 갈망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한민국 체제를 인정하는 잠재적 지지층들은 대략 두 가지가 불만이었다. 취임 후 지금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과, 앞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그동안 한미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소주성이나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는 등 굵직한 일들을 많이 했으나, 용산에 새로이 터를 잡고, 아내 리스크를 관리하느라 적지 않은 에너지의 누수가 생긴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빚은 탕감해주면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고, 소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정부 인사는 함께하면서 정작 당 내부는 서로 총질로 시끄러운 상황도 혼란스럽다. 불만의 핵심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새 세상이 온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새 정부가 추진하는 변화의 속도, 강도, 방향이 모두 불만이었다.

이제 새 정부가 했으면 좋았을 일을 역으로 상상해보면 지금의 낮은 지지율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인식대로 지금도 독립운동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면, 좀 더 절실하고 확고하게 자유의 로드맵을 세우고 강하게 제시했어야 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가치 공동체로서의 내각을 구성하고, ‘되찾은 자유’를 각종 정책에 스며들게 한 정책 청사진을 발표하며, 총체적인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 마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듯이 말이다. 그 연장에서 북한에도 비핵화와 경제 발전을 교환하는 실용적인 제안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유나 인권을 조금은 들먹여야 했다. 그래야 소위 ‘담대한 제안’이다.

 

 

역사를 조금만 훑어봐도 자유로 가는 길엔 언제나 피가 흥건했다. 토머스 제퍼슨의 표현대로, 자유라는 나무는 독재자의 피와 애국자의 피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유를 구현하는 길에 인류가 갖다 바친 목숨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무거운 사명을 어깨에 짊어진 지도자는 더 고뇌하고 진지해야 한다. 양피지에 새겨진 법조문을 읊조리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립투사들은 대개 아내를 외롭게 한 사람들이다. 영화관에서 아내랑 팝콘을 먹는 투사는 상상되지 않는다.

더 한심한 건 여당이다. 그들이야말로 새 정부의 집권당으로서 사명이 천금같이 무거운데, 당대표의 성 상납 의혹 같은 저급한 이슈에 발목이 잡혀 ‘자유’의 ‘ㅈ’에도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진위나 잘잘못의 경중을 떠나, 서로를 향한 쓴소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 용의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적인 대의를 위해 피를 흘리기는커녕 제 편끼리 상처 주며 피와 눈물을 쏟기 바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국회의원의 ‘갑옷’을 위해 염치고 도덕이고 법이고 모두 무시하고 선거에 나가고, 또 당선되고, 그런 사람을 또 당대표로 선출하는 야당의 모습이다. 남들이 피 흘리며 지키려 하는 고귀한 자유를 고스란히 반납하고 개인을 숭배하는 이상한 무리가 ‘그 인간이 무조건 좋다’를 외치는 섬뜩함 위로 ‘윤석열 인간 자체가 싫다’는 김여정이 오버랩된다. 단 한 사람의 ‘자유인’을 위한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게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에 뒷골이 서늘할 따름이다.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를 지우고 역사를 되돌리려 했던 사람들 아닌가.

사태가 이러한데, 자유를 수십 번 외친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마치 손톱 밑 가시 뽑는 기업 규제 완화쯤으로 한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자유는 쓸려나갈 위기에 있었고, 그걸 두려워한 국민이 나서서 정권 교체를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되돌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되찾은 자유’를 대한민국 안에서 확장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탄생한 정부다. 실용적으로, 적당히 타협하며, 경제 정도 살피는 정치를 하라고 애먼 검사 출신을 불러내서 대통령으로 만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