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52] 80대 소설가의 일상
전남 곡성군 신전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소설을 쓰는 이재백. 1939년생이니까 83세다. 히트작은 없지만 요즘도 계속 농사지으면서 소설을 쓰는 중이다. “요즘 꽃이 피어서 한창때이네. 꽃이 다 지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세.” 노장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지리산 암자에 있다가 내려와서 함양에서부터 남원, 곡성의 녹음이 우거진 산천과 동네를 통과해야만 하였다.
곡성군 압록으로 차를 타고 갔다. 섬진강이 눈앞에 흐르는 아름다운 강변역인 압록(鴨綠). 아름다운 강물과 풍광이 어우러져 있다. 압록에서 다시 지류인 보성강 물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면 곡성군 목사동(木寺洞)면이 나온다. 풍수도참에 의하면 과거에 18군데의 절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전라도의 산골 동네이다. 목사동에는 황새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 관암촌(鸛岩村)이 있다. 이 황새바위 밑으로는 이번에 전남도지사 출마했다가 떨어진 이정현의 고향 집이 있다.
관암촌에서 다시 ‘벌 명당’의 고개를 넘으면 천태산 자락에 이재백의 집이 있다. 300년 된 동네이다. 앞으로는 형제봉이 병풍처럼 쳐져 있다. 지난 4월 하순에 갔을 때 마당에는 재래종 사과나무꽃이 만발했다. 6~7m 높이의 하얀색 사과나무꽃이 만발한 모습을 쳐다보니까 저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 80대가 되면 활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데 요즘도 책을 보십니까?” “월간지도 보고 계간지도 구입해서 보지. 계간지에 한 회당 원고지 250매씩 집필하고 있네.” 그 나이에 계간지에 250매씩 글을 쓴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글을 쓰려면 읽어야 한다. 비록 흐릿하기는 하지만 아직 읽을 수 있고, 읽는다는 것은 아직 지적 호기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노인이지만 읽고 쓰고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훤히 알고 있다. 뇌의 근육이 아직 말랑말랑하다. 나이 들어도 신문을 보고 잡지를 읽는 시력과 지적 호기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팔자에 해당한다. 시골에 사니까 틈날 때마다 하루에 1~2시간씩 집 옆의 배 밭을 관리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농사짓는 소설가’이다. 유명한 작품을 남긴 소설가는 아니지만 후배 소설가들이 전라도에 여행 오면 꼭 들러서 이 모습을 보고 간다. 읽고 쓸 수 있는 80대는 복 받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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