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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어떤 시] [78] 청포도

최만섭 2022. 7. 11. 05:11

[최영미의 어떤 시] [78] 청포도

입력 2022.07.11 00:00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李陸史·1905~1944)

청포도가 맛있는 7월에 생각나는 시. 3행의 ‘주저리주저리’라는 우리말 의태어, 하늘(빛)이 포도 알에 들어와 박힌다는 표현이 멋지다. 하늘, 푸른 바다, 흰 돛 단 배, 청포, 하이얀 모시. 색채 대비가 눈부시다. ‘아이야’의 3음절에 맞추어 그 다음 행에 ‘하얀’을 ‘하이얀’으로 늘린 세심함이여.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감탄하다 7행에 이르러 머리가 복잡해진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누구이며 왜 그는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올까? 이육사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시인이다. 그는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했고 베이징의 감옥에서 서른 아홉살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기까지 십여 차례 투옥되었고, 이육사라는 이름도 수인번호 ‘264′에서 따왔다.

청포는 감옥에 갇힌 독립지사들의 수인복, 육사가 기다리는 손님은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지가 아닐까. ‘고달픈’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가 시가 깊고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