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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요즘엔 자식이 손 안 벌리는 것도 부모로선 호강이지요”

최만섭 2022. 6. 14. 05:02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요즘엔 자식이 손 안 벌리는 것도 부모로선 호강이지요”

못사는 집 외동아들인 나 “성공해서 엄마·아빠 호강시켜 주겠다”
커서는 연극인 꿈 숨기다 어머니 암 진단 소식에 포기하려고 생각
“먹고살 운명 타고났으니 걱정마세요” 스님 말에 용기 얻어 고백

입력 2022.06.14 03:00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2년 내내, 머릿속에는 연극 생각뿐이었다. 제대하면 학교 동기들과 극단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제대 날이 다가올수록 두근거렸다.

나는 외둥이였고 집은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호언장담했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성공해서 엄마 아빠를 호강시켜주겠다고. 학년이 오를수록 성적이 떨어졌고, 점수를 맞춰 대학에 갔다. 부모님은 별 내색이 없었다. 그 내색 없음이 나를 자꾸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우연히 연극을 보게 되었고, 곧바로 빠져들었다. 강의실에 있을 시간에 극장에 갔고, 과제를 할 시간에 대본을 썼다. 풍물패에서 연극하며 동기들을 만났고, 그들과 극단 꿈을 꾸게 되었다. 문제는 그 꿈을 부모님이 모른다는 거였다.

그림=이철원

집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나는 부모님 몰래 휴학했다. 전공과 다른 꿈을 꾸기가 죄송해서 등록금만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그렇게 동아리 방만 다니며 연극만 생각하다가 군대에 갔다. 2년 내내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연극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 삶을 부모님께 허락받을 수 있을지. 제대 날이 왔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경상도에서 열리는 연극 축제에 자원봉사단으로 참가했다. 일주일간 일하고, 연극을 보고, 뒤풀이를 하며 연극인 선배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꿈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폐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어머니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올라올 수 있냐고.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말했고,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이상해서 무슨 일이냐 물었고, 어머니가 말했다. 암에 걸렸다고. 나와 어머니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집으로 떠났다. 내 꿈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꿈을 이룬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부모님의 삶을 물어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제대 며칠 전에 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내가 놀랄까 봐 제대 날까지 소식을 숨겼다. 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었고, 부모님은 내 머리가 다칠까 봐 울었다.

며칠 후에 수술이 잡혀 있었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외식을 하고, 여행을 가고, 한 이불을 펴고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네가 언제 걸음마를 하고, 한글을 읽고, 혼자 서점에 가고,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무언가 빛나는 일을 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호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 나는 연극을 할 수 없겠구나. 호강을 시켜드려야겠구나. 근데 무슨 일을 해야 호강시켜드리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느 산속의 절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마도 입원하기 전에 용기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참 걸어서 절에 도착했고, 눈이 어린아이처럼 빛나는 스님이 맞아주었다. 스님은 한동안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떤 큰 병이 생겨서 조만간 큰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분명히 나을 거라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울었다. 어머니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지고 빛이 났다. 어머니는 내친김에 아들 관상도 봐달라고 했다.

스님은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나는 불안했다. 만약에 엄청 큰일을 해서 부모님을 엄청 호강시켜 줄 상이라고 하면 어쩌지. 아직 뭘로 호강시켜 드릴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스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마 자기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 먹고살 운명은 타고 났으니 걱정 마세요. 반드시 먹고삽니다. 또 한번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부모님이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얼싸안았다. 우리 아들이 먹고살 운명을 타고났구나!

그러나 잠시 후 스님은 다시 말했다. 근데 정말로 아드님 딱 한 명만 먹고살 운명입니다. 아마도 10년 정도는 혼자만 먹고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두 분은 한 10년 동안은 아드님한테 뭘 바라면 안 됩니다. 부모님은 약간 헷갈리는 눈빛이었다. 전공과는 다른 일인데, 먹고는 사는데, 혼자만 먹고산다고? 그런 직업이 대체 뭐지? 스님 그 직업이 뭡니까? 글쎄요, 저는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선 부모님께 손을 안 벌리는 것도 호강이지요. 그렇죠, 호강은 호강이죠. 부모님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합장했다.

우리는 다시 나란히 산을 내려갔다. 속세가 내려다보이는 입구에 도착한 순간, 나는 드디어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연극이 하고 싶어요. 두 분 중 한 분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 스님이 말한 그게 연극이었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