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젊은 정치’는 선거 때만 필요한가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만섭 2022. 7. 18. 05:14

[朝鮮칼럼 The Column] ‘젊은 정치’는 선거 때만 필요한가

 

입력 2022.07.18 03:14
 
 
 
 
 

지난 대선 과정에서 주의 깊게 지켜본 건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었다. 과거 선거에서 이들은 선거에 무관심하거나 진보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관심이 크고 또 이들의 선택도 분화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오랜만에 젊은 세대가 선거에서 큰 관심 대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전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당시 20~30대 젊은 유권자의 열렬한 지지가 노무현의 당선,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또한 86세대 정치인들의 본격 등장을 알리는 선거이기도 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젊은 유권자들이 다시 선거에서 주목받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열망이 표출되었다고 생각했다.

13일 광주 무등산에 올라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8·2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페이스북 이덕훈기자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였다. 그의 당대표 당선은 황교안 대표 체제 때까지 보수 정당이 짊어지고 있던 구시대, 노령 지지층, 탄핵 정당과 같은 낡은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30대 젊은 대표의 존재감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요했고, 그래서 더불어민주당도 부랴부랴 20대 박지현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셔야 했다. 선거에서 주요 양당의 얼굴이 20~30대로 채워진 건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그만큼 이번 선거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실체가 법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안으로 당원권을 정지당해 사실상 대표직에서 쫓겨났고,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자격 요건을 못 채웠다고 당대표 출마조차 거부당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당원과 대의원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한 당대표를 대통령의 권위에 기댄 당내 실력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몰아낸 셈이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상시’에는 사실상 당대표였지만 ‘평시’가 된 이제는 자격이 없다는 이중 잣대로 젊은 정치인의 출마를 막고 있다. 내세운 명분이 어떠하든 양당의 이런 행태는 정치적 기득권을 놓을 수 없다는 당내 기성세대의 욕심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이런 모습은 더욱 걱정스럽다. 무리한 방안을 동원한 것은 결국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그 영향력에 기대어 당을 장악하겠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 여당은 정책적으로 대통령을 지원해야 하지만, 동시에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미래 정치도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 측근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당장 눈앞의 것만 보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난 5년 동안의 더불어민주당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윤핵관’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달라질 건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국민의힘은 이제 다시 노령층 지지에 의존하는 정당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강고하지 못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여당 내 일부 인사의 무리한 정치적 욕심으로 스스로 그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컸다는 건 이들의 불안과 좌절이 크지만 이들의 요구가 정치권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대조적으로 이준석이나 박지현의 말 한마디가 사회적으로 작지 않은 반향을 불러온 건 이들이 그 세대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새로운 의제와 담론을 이끌고 갔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답할 수 있는 정치는 결국 이 젊은 세대가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의 요구에 대해 기성 정치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리니까 부족하고 실수도 많다’고. ‘앞으로 기회가 있을 것’이거라고. 1970년 신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온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당의 기성세대에게 들었던 말은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젖비린내 난다’는 그들이 야당 정치의 미래였고 실제로 그 이후의 정치를 주도해 갔다. 또한 세상을 뒤엎은 5·16을 기획하고 중앙정보부와 민주공화당 설립을 이끈 김종필의 1961년 당시 나이는 35세였다. 정체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젊은 정치의 부상은 필요하다. 사회적 활력과 역동성이 컸던 1960~1970년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는 46~47세였다. 그때와 비교해도 우리 정치는 늙었다.

당장 젊은 정치의 부상을 억눌렀다고 해서 세대 변화 요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불과 2년 후에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정치적 변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세대교체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데 낡은 배의 키를 서로 잡겠다고 달려드는 기성 정치의 모습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