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차학봉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고물가·고금리 습격, 글로벌 주택 시장 ‘미친 집값’이 ‘급락 공포’로 돌변

최만섭 2022. 7. 14. 05:14

[차학봉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고물가·고금리 습격, 글로벌 주택 시장 ‘미친 집값’이 ‘급락 공포’로 돌변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 거품 순위 1~3위 하락세

입력 2022.07.14 03:00
 
 
 
 
 

팬데믹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한 세계 각국의 초저금리 정책과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폭등했던 글로벌 주택 시장이 냉각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글로벌프로퍼티가이드 조사 결과(1분기 기준), 조사 대상 59개 국가 중 38국은 지난 분기 조사보다 집값 상승률이 낮아졌다. 특히 뉴질랜드, 스웨덴, 네덜란드, 아일랜드, 덴마크, 홍콩 등 22국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1분기 실질 집값 상승률이 하락세를 기록했다. 초인플레이션에 대응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각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끝없이 치솟던 ‘미친 집값’이 ‘급락 공포’로 돌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면서 캐나다 등 한때 뜨거웠던 주택 시장이 급랭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품 1~3위 국가 하락 주도

해외 이민 수요와 주택 부족으로 ‘부동산 불패론’이 맹위를 떨치던 캐나다의 집값이 급락하고 있다. 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토론토의 6월 평균 주택 거래 가격이 114만6254캐나다달러로, 고점이었던 2월보다 14% 하락했다. 석 달 사이에 20%까지 하락한 지역도 있다. 팬데믹 이후 쾌적하고 넓은 주택을 찾는 수요로 집값이 폭등했던 토론토 외곽 지역이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집값이 급락세로 돌아선 결정적 원인은 기준 금리 인상이다.

캐나다중앙은행은 3월 기준 금리를 0.25% 인상한 데 이어 4월과 6월에 각각 0.5% 인상했다. 현지 언론들은 “금리가 주택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캐나다 현지 매체 밴쿠버선은 최근 “지금 집을 사지 못하면 영원히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포모(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지금 집을 사면 집값이 폭락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풉(FOOP, fear of overpaying)’ 증후군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과 5월에 각각 0.5%포인트씩 기준 금리를 인상한 뉴질랜드는 최근 석 달간 전국 기준으로 3.5% 하락했다. 뉴질랜드부동산연구소(REINZ)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오클랜드는 5.4%, 웰링턴 시티는 9.4% 하락했다.

스웨덴은 중앙은행이 집값 급락을 경고하고 있다. 스웨덴의 주택가격지수(HOX)가 4월 0.5%, 5월 1.6% 하락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낙폭이 커지고 있다. 스웨덴중앙은행은 최근 2023년 말까지 스웨덴 집값이 16%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 하락을 주도하는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은 지난해 블룸버그통신이 선정한 주택 거품 국가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이들 국가는 기준 금리의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대응, 집값 하락

집값 향방은 인플레이션에 달렸다. 미국은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8.6% 상승하면서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었다. 초인플레이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수단이 금리 인상이다. 1970년대 말 오일 쇼크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미국 물가 상승률이 15%에 근접했다. 미국은 1979년 11.5%이던 금리를 1981년 21.5%까지 끌어올려 물가를 잡았다.

보통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하지만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가 집값 상승도 가로막기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가 초래한 경기 침체가 집값을 급락시키기도 한다. 국토연구원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주택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1974~1975년 한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오일 쇼크 영향으로 25%에 달했다.

1972년 15% 가까이 치솟았던 실질 주택 가격 변동률은 1973~1975년에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1980년에 실질 지가지수 변동률은 13% 하락했다. 1970년대 미국, 독일, 영국 등도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자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렸고 집값도 하락했다. 국토연구원은 “지속적인 물가상승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 헤지(inflation hedge)로 실물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경기 침체 리스크가 높아지면 주택 수요가 위축된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분양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주택 수요 위축에 따라 분양 가격 상승은 제한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14 초 후 SKIP

리먼 쇼크급 붕괴 가능성 있나?

경기 침체, 자산 가격 급락 우려도 나온다. 리먼 쇼크를 예견했던 헤지펀드 GMO 창업자 제러미 그랜섬 등이 작년부터 미국 주식과 주택 시장 거품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주택 구입과 관련, “수요와 공급이 재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금융 및 주택 시장이 급격한 조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며 매우 심각한 자산 급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등 상당수 국가는 여전히 집값이 오름세다. 미국은 모기지 금리가 전년 말 3%에서 최근 6% 안팎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에 따르면 5월 기존 주택 중위 가격이 40만7600달러로, 전달(39만1200달러)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성재 가드너웹 대학교 교수는 “미국의 경우 금리 급등, 주택 착공 증가 영향으로 가격 급등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 금융 위기급 주택 시장 붕괴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뉴질랜드와 달리 미국은 고정 금리 대출 비율이 80%를 넘고 대출 심사도 엄격해서 집값이 하락해도 주택 시장 붕괴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튀르키예, 대통령 오판으로 매달 11% 집값 급등]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주택 시장이 얼어붙고 있지만, 튀르키예(터키)만은 여전히 ‘광란의 집값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4월 기준으로 연간 집값 상승률은 127%다. 매달 11%씩 집값이 치솟았다.

튀르키예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인은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주택을 사는 수요가 급증한 점이다. 튀르키예 연간 물가 상승률(5월 기준)은 73.5%다. 집값이 일반 물가보다 훨씬 더 오르고 있다. 튀르키예 고물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도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금리 인하다. 물가가 치솟으면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려 대응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소신으로 금리 인하를 주도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해 19%이던 기준 금리를 14%로 낮췄다.

결과는 대통령의 소신과는 정반대였다. 금리 인하로 튀르키예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입 물가가 폭등, 사상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 주택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집값이 치솟자 터키 정부는 첫 내 집 마련 주택 수요자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 이것도 집값 상승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여기에 해외 투자 수요도 몰리고 있다. 집값이 올라도 화폐 가치 폭락으로 외국인들에게는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40만달러 이상의 주택을 구입하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어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이주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