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반도체 인재 양성, ‘문교부 시대’로 돌아가선 안 된다
지금은 뛰어난 인재 한 명이 세계인의 삶 바꾸는 시대
1970년대식 대학 규제로 산업 역군 기르는 때 지나
새로운 지식·기술·가치 창출은 대학의 자율 위에서만 가능
최근 대학과 관련된 두 개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 고위 관료에게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의 문제점을 질타했다는 기사였다. 대학의 정원 확대나 학과 증설이 교육부의 규제하에 놓여 있었는데 이걸 과감히 풀라는 주문이었다. 나의 관심을 끈 또 다른 기사는 교육부가 감사를 통해 서울대학교 총장에게 경징계를, 그리고 400여 명의 교수들에게는 경고 및 주의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 두 기사가 오늘날 한국의 고등교육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교원 관련 사건 처리를 하버드 대학이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미루고 있다고 해서 미국 연방정부의 교육부가 대학에 총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들이 행정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국 교육부가 직접 나서 교수들에게 경고나 주의 조치를 준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중세 때조차 대학은 자치의 공간이었고 심지어 스스로 독립된 법정을 갖기도 했다. 서울대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감사 결과는, 단지 학과 인원 조정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이 여전히 교육 관료의 엄격한 통제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국민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부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결국 인재를 양성해서 나라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문맹률을 낮추고 선진 국가의 기술을 모방하고 따라갈 수 있는 학력을 갖추는 것이 당시 교육의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 달성에 ‘문교부’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결국 박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인적 자원에 의존해서 우리는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제는 ‘모방하고 따라잡는’ 수준의 교육 시스템으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도약을 이뤄내기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지식, 기술,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인재 양성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걸 끌고 나갈 힘은 이제는 국가가 아니라 대학, 연구소, 민간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식 생태계의 중심이 되는 대학은 자율의 기반 위에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대학이 처한 현실은 여전한 ‘문교부의 시대’이다.
윤 대통령은 교육부의 의무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혹시라도 1970년대 식 인재 양성의 반도체 버전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 정책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질타가 당장 반도체 기술자가 부족하니 3만명의 ‘반도체 역군’을 신속하게 육성해 내라는 식의 지시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지금은 뛰어난 인재 한 명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꿔내고 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는 시대이다. 교육에 대한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70년대 식 산업역군의 양성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탁월한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 자율을 허용하고 다채로운 실험과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허용해서 각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하고, 학교 재정이나 학사 운영과 관련된 각종 규제도 대폭 철폐해야 한다.
이참에 교육부의 역할 재조정도 필요하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지방 교육청이 담당하고 있고, 금년 7월이면 교육 비전, 중장기 교육 정책 방향과 교육 제도 개선 등을 담당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공식 발족한다. 결국 교육부가 직접 통제할 대상은 대학만이 남은 셈이다. 교육부가 규제 기관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보다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 방향으로 역할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교육부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박재완 전 장관이 한 회의에서 지적한 대로,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하는 보모국가(nanny state)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성장한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보모가 아이 다루듯 정부가 이것저것 참견하려는 폐습은 여전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들’에 대해 언급했다. 옳은 말이다.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위해서는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학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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