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지가 않어? 장기하가 부럽다"…MZ들 SNS 지우는 이유
입력 2022.05.30 05:00
업데이트 2022.05.30 10:09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어떤 때는 요가하며 사는 이효리의 삶을, 어떤 때는 명품 두르고 사는 도시 생활을 부러워했죠.”
회사원 서모(29)씨는 1년째 SNS를 줄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서없어진’ 자신의 취향을 되찾기 위해서다. 그는 “분명 나도 나만의 가치관이 있었을 텐데 어느새 잃어버렸다”고 했다. 서씨는 그 원인을 SNS에 반복 노출됐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SNS를 자주 보며 ‘부럽다’,‘신기하다’에서 끝나던 감상이 점점 형언하기 어려운 자격지심 같은 감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SNS에 자주 보이던 명품의 가격을 찾아보는 자신을 발견한 서씨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고교 3학년 때부터 10년을 하루에 3~4번 게시물을 올리는 ‘헤비 유저’로 지내온 서씨는 그날로 SNS 친구의 4분의 3일 삭제하고 계정을 ‘비공개’ 처리했다. 게시물은 3~4개월에 한 번 올릴까 말까다. 이른바 ‘SNS 다이어트’다.
“‘부럽지가 않다’는 장기하가 부럽다”
지난 2월 22일 출시된 가수 장기하의 앨범 '공중부양'의 재킷 사진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는 MZ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바이브 뮤직]
지난 2월 발매된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추세와 관련이 있다. 이 앨범은 SNS를 이용하며 MZ세대가 느껴 온 자격지심을 겨냥한다. 유튜브 숏츠 등 숏폼 동영상에서 배경음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노랫말은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세상에 부러움이란 걸 모르는 놈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이 노래에 열광하는 건 ‘자랑’에 짓눌리고 ‘부러움’에 괴로워해본 MZ들이다.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패러디되며 인기를 끌었다. [출처 유튜브 캡처]
유튜버 랄랄이 내놓은 패러디 영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너무 부러우니 자랑할 거 있으면 너희 엄마한테 가서 하라”며 가사를 비틀었다. “이게 진짜 사람 마음”이라는 댓글이 달리며 호응을 얻었고 178만명이 시청했다.
최근 SNS를 아예 로그아웃해두기로 한 김모(26)씨는 “‘부럽지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기하가 부러웠다”며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비교하며 살았다. (SNS를 로그아웃 한) 지금이 내겐 적절한 정보의 양”이라고 말했다.
“필요 이상 부러워했다”…SNS로부터의 ‘해방’
지난해 김모(25)씨와 친구 9명은 서로 연락할 때 카카오톡이나 SNS 대신 이메일을 쓰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은 단체로 비활성화했다. 김씨의 친구가 ‘우리 학교 취준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방식’이라며 함께 해 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메일을 이용한 SNS 다이어트는 올해까지 이어졌다. 하루 한 번 보내는 이메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있었던 일들, 부모님과 산책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담겼다.
김씨는 “SNS를 보며 ‘쟤는 놀러도 가고 연애도 하네’라며 나와 남을 비교했다. 내 생활과 연결돼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김모(25)씨는 친구와 함께 SNS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며 대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제공 김씨]
20대 고시생 A씨는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남들 잘사는 모습을 보기 괴로워서 SNS를 지웠다”고 말했다. 여행이 취미였던 A씨는 친구들이 여행지를 누비는 모습이 담긴 게시물들을 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숨김’ 처리를 하다가 결국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구모(24)씨를 괴롭힌 건 SNS에 만점에 가까운 시험지를 올리는 ‘공부 계정’들이었다. 구씨는 “그분들이 매일매일 모든 문제를 다 맞췄던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비교됐다. 인스타를 삭제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며 “삭제 후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SNS로부터 놓여났다(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SNS의 ‘극단 최고’ 유념해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로고. [AP=연합뉴스]
SNS는 여전히 MZ세대의 주요 놀이 수단이지만, 다이어트 또는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SNS 이용현황’ 설문조사에서는 다른 사람의 게시글 확인 빈도와 관련해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한다”고 답한 20대가 2020년 35%에서 2021년 29.5%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10대도 34.4%에서 30.6%로 조사됐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는 “최근 부를 자랑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점점 사라지고 ‘잘 나가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며 “특히 SNS는 모든 대상이 과장되기 쉽고 ‘최고의 극단적 상황’이 일면적으로 보여진다. 정신적으로 고갈되지 않도록 그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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