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으로 하향세를 걷던 주택 가격이 대선 이후 윤석열 차기 정부의 규제 완화 기대감에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서울 강남의 주부들은 “10년간 살면서 세제 혜택 조건을 완전히 채운 집을 팔아 차익을 챙기고, 재건축 단지 아파트로 이주해 향후 집값 상승을 노릴 때”라며 집테크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폭등 이후 하락하던 집값은 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을까? 전문가들은 정책들이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순서와 강도로 발표되어야 하는데, 대선 공약 형태로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상쇄 효과와 반대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융 규제책을 유지하면서, 주택 공급 상황에 맞춰 세금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공급은 늘리지 않고 세금 폭탄 등 수요 억제책에만 의존한 탓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임기 중 주택 250만호를 민간 주도로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개발과 재건축을 확대하고 신규 택지를 발굴할 예정이다.
윤 당선인은 또 부동산 시장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을 완화하고, 대표적인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장기적으로 재산세와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대출 규제도 완화할 방침이다. 전세금 대출을 완화해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고,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청년들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대출 한도액 산정 기준이 되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상한선을 현행 40%에서 80%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오는 5월 10일 새 대통령 취임 직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1년간 완화하는 조치를 즉각 시행, 시장에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이다.
무더기 발표에 시장 혼란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을 늘려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새 정부의 기본 방향은 옳다고 본다. 주택 공급량이 늘면 결국 주택 가격은 하향 안정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4~5년씩 걸린다. 그래서 이 동안 재건축·재개발 붐으로 발생할 투기 수요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질서 있는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모든 정책은 각각의 효과가 있고, 동시에 사용하면 서로 효과가 상쇄되거나 정책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택 공급 확대는 주택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지만, 보유세와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완화는 상승시키는 정책이다. 주택 대출 규제를 완화해도 빚투(빚내서 투자)가 살아나면서 주택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상이한 효과를 내는 정책이 대선 과정에서 동시에 쏟아지면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규제 유지가 중요
주택 공급을 늘려가면서 그 동안 발생하는 투기 수요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이 실제로 확대되는 시점까지 무엇보다도 금융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영훈 전 조세연구원 부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금융 규제책을 먼저 쓰고 조세 정책을 보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말기에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부동산 폭등 대응책을 발표하면서 “이번 금융 정책이 먹히지 않으면 다주택자는 만기 도래하는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구두탄(口頭彈)을 쏘아 효과를 봤다. 집값이 더 오르면 만기가 된 다주택자의 대출을 갚도록 하고, 못 갚으면 은행에서 집을 경매로 매각해 버린다는 뜻이다.
IMF(국제통화기금)도 지난 3월 한국 정부와 연례 협의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낮은 대출 금리와 높은 신용 대출에 의한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LTV 규제를 강화하고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 등 거시 건전성 조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투기 규제책도 필요
전문가들은 재건축 입주권 투기와 ‘똘똘한 고가 주택 한 채’ 선호 현상에 대한 근본 대책도 강조한다. 재건축 입주권은 입주권을 주택 수에 포함해, 입주권을 사서 1가구 2 주택자가 되면 다주택자 종부세율을 적용받게 하고, 1년 이내에 기존 주택을 팔아야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경우 재건축 입주권을 활용해 6~8년간 1가구 1주택자 세(稅)테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똘똘한 한 채’ 대책은 정부가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세금 부담을 완화하면서 서울 강남의 ‘똘똘한 한 채’ 수요가 확산, 전국의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방안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파트 한 채로 10년간 30억원 이상 양도 차익을 얻으면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양도 차익의 몇 %로 되어 있는 세금 면제 방식을 매년 일정 금액으로 바꾸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의 1가구 1주택 계산 시점을 변경하면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주택을 모두 팔고 마지막으로 집이 한 채 남은 시점부터 1주택자 세금 혜택을 주기 시작하면 고가 주택 보유자가 다른 저가 주택을 여러 채 사들일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터뷰]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금리 상승으로 패닉 바잉 줄듯…차기 정부 공급 속도가 관건”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향후 2~3년간은 금리 인상 흐름 때문에 최근 몇 년처럼 빚내서 주택을 사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주택 시장 안정은 정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박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등 민간을 중심으로 공급을 늘리겠다고 제시한 만큼 새 정부 5년간의 부동산 시장 핫 이슈는 재건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폭발성이 강한 재건축과 1기 신도시 재정비, 건축비 상승,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완화에 대한 공약 효과가 지속되면 올해 아파트 가격은 크게 내릴 것 같지 않다”고 예상했다.
박 수석은 특히 새 정부가 1가구 1주택에 대해 부동산 보유세 완화 정책을 쓰면 서울 지역의 고가 주택에 대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수도권에 다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 지역의 주택을 먼저 매각하고, 고가의 서울 주택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중심부와 외곽 간 시장 차별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정부가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매물 증가 정책을 쓰고 있다”며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로 전월세를 낀 매물이 시장에 일부 나오겠지만, 전세를 떠안고 사고파는 갭 투자 수요가 많지 않아 거래는 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수석은 올해 주택 가격이 크게 내리지도 않겠지만, 크게 오를 가능성도 낮게 봤다. 올 들어 대출 금리가 오르고 집값 급등에 따른 피로감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더라도 작년처럼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재테크 지능지수가 높은 30대도 이러한 추세를 고려해 올해는 집단적인 영끌 빚투(영혼까지 담보로 잡히고 대출 받아 주택 매입)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수석은 “어느 정부든 주택 정책의 궁극 목표는 거래량과 가격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도심 주택 공급의 원천인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에 물꼬를 틔우면서도 일시적인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장치를 함께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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