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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우크라 사태에 러 가스 의존도 높은 獨 비상… 佛·英은 원전 비율 늘리기로

최만섭 2022. 3. 30. 05:11

 

[알베르티의 유럽 통신] 우크라 사태에 러 가스 의존도 높은 獨 비상… 佛·英은 원전 비율 늘리기로

 

프란체스코 알베르티 이탈리아 저널리스트·前 마이니치신문 기자
입력 2022.03.30 03:00
 
 
 

2015년 파리 협정에 따라 유럽연합(EU)은 지구온난화를 줄이고 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55%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유럽집행위원회(EC)가 정한 것이 녹색 분류체계로 불리는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다. 이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분류하는 체계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변화 적응 등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고,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 여부를 판별하는 정책 기준으로 쓰인다. ‘친환경 투자를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택소노미에 포함돼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받으면 EU 기후변화 대응 투자 예산(그린딜)을 지원받을 수 있고, 관련 기업은 녹색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탄소중립적 정책과 투자에 관한 틀이 마련된 것이다. 지난달 유럽집행위원회는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유럽집행위원회(EC) / 그래픽=김하경

요즘 유럽에서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것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탈리아 루이스귀도칼리대 안토넬라 트로치노 교수는 “원자력 포함 여부를 놓고 맞서던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결론을 낸 것”이라고 했다. 재생 에너지 전문가 로렌조 발레치는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해야 하는 독일, 원자력발전소에 비중을 두고 있는 프랑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정치적 타협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택소노미에 포함된 것은 프랑스와 독일의 경제적 이익을 반영한 것이다.

EU 최대 경제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반대 입장에 있었다. 전력의 약 70%를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하고 있고 향후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인 프랑스는 원자력이 택소노미에 포함되어야 한다며 강력한 로비를 벌였다. 반면 원전의 단계적 폐기 이후 에너지 생산의 약 4분의 1을 석탄에 의존하는 독일은 천연가스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럽의 환경단체들은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것은 파리 협정 위반이라고 나서고 있다. 일부 단체는 지난달 유럽집행위원회에 바이오에너지를 포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논란에도 택소노미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석탄 발전소 건설 사업에 자금을 대고 싶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택소노미가 탄소 중립을 위해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정도의 인센티브에 그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오히려 ‘탄소 국경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유럽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EU 지역 내에서 생산할 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탄소 초과분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것이 시행되면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택소노미보다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트로치노 교수는 “EU 택소노미가 강제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유럽은행감독청(EBA)이 개입하면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를 기준 삼아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강조하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제공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의 총 대출 및 투자 지분 보유액 중 ‘친환경 자산’의 비율도 부각될 전망이다. 이른바 녹색 자산(Green Asset) 비율이 공개되면 시장과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투명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린 워싱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뜻한다. 기업이 자사 제품을 친환경적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인용된다.

그린 택소노미와 그린 워싱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 전역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전체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EU는 러시아에서 주로 수입하는 가스 의존도를 대폭 줄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각국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에너지 자급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체·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더욱 절실하게 찾아나서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각국의 에너지 자립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셈이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분류하는 체계.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 여부를 판별하는 정책 기준으로, ‘친환경 투자를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그린워싱(Green Washing)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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