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惡心, 우리 모두 善心 쓰자”

최만섭 2022. 3. 25. 04:46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惡心, 우리 모두 善心 쓰자”

조계종 새 종정 성파 스님 첫 간담회

입력 2022.03.25 03:00
 
 
 
 
 

“코로나보다 더 악랄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심(惡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악심과 선심(善心)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마음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악심을 품고 행사하면 코로나보다 더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큰 권력 아니라도 개개인이 한 걸음 양보하고 악심 아닌 선심을 품고 쓰면 춘풍(春風)이 불고 꽃과 잎이 필 것입니다.”

다음주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는 성파 스님은 24일 간담회에서“선심을 내고 쓰자”고 강조했다. 스님은 평생 통도사를 지키며 한지, 옻칠, 천연 염색 등 우리 전통문화 복원에 힘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작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16만 도자대장경 앞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동환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으로 추대된 성파(性坡·83) 스님은 24일 오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선심을 내고 쓰자”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종정에 추대된 성파 스님은 26일부터 임기(5년)를 시작하며 30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취임식을 갖는다.

이날 성파 스님은 1시간여에 걸친 간담회 내내 소탈한 모습이었다. 질문 20여 개에 모두 대답하면서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다”며 여러 차례 “답이 시원치 않나?”라고 물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는 “종정 되고 어떤 사전 계획 같은 건 없다. 태풍이 불면 태풍 단속하고, 가뭄이 심하면 산불 예방을 해야 한다. 형편 따라 하겠다”며 “당장 부처님오신날(5월 8일)까진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법어 구상도 안 했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는 개인으로서 살아왔다면 앞으론 종단에 여러 스님들이 계시니 좋은 안(案)이 나오면 그에 따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당한 변화도 예고했다. 한때 조계종 내 불통의 상징이기도 했던 종정 예경실(비서실)을 따로 두지 않고 통도사 주지 스님이 예경실장을 겸하고 통도사 스님들이 사서(비서) 역할을 하도록 했다.

성파 스님은 40대 중반에 통도사 주지를 마친 후 보통 스님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이판(理判·수행승)과 사판(事判·행정승)으로 나뉘곤 한다. 그러나 스님은 도자기(도자삼천불상·16만 도자대장경), 옻칠, 전통 염색·한지 제조, 간장·된장 등 전통 장류(醬類), 들꽃 가꾸기 등에 앞장서며 이판·사판이 아닌 ‘제3의 길’을 개척했다. 모두 한때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잊힌 전통문화와 기술이다. 그는 한 가지 기술을 복원할 때마다 전 과정을 모두 기록하고 촬영해 후세에 다른 사람이 재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엔 도서관에서도 잘 받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종이책을 무제한으로 모으고 있다.

 

그는 평소 “과학기술은 더욱 첨단으로 발전해야 하지만 사찰은 신라·고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불교가 감당했던 정신문화와 전통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40년에 걸쳐 전통문화의 복원에 직접 팔을 걷어붙여온 이유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그는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흔히 입당구법(入唐求法)이라 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 스님들은 불교를 배우러 당나라에 간 것으로만 알지만 자장 스님은 50대에 화엄학의 대가로 당나라에 가서 당태종에게 화엄을 설(說)했으며 서기 7세기에 신라는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탄생시켰다는 것. 그는 또 “신라, 고려, 조선으로 왕조는 바뀌었지만 불교는 항상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주축이었다”며 “조계종이 정신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실 정치·사회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새 정부에 대해서는 “좋은 말이 많았는데, 얼마만큼 행하는지 보고 있을 따름이다. 잘하도록 바라고 두고 볼 일이지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와 옛 스님의 대화도 소개했다. 백거이가 스님에게 ‘도(道)가 무엇이냐’ 물으니 스님은 ‘악을 짓지 않고, 착한 일을 봉행하라’고 했다. ‘그거야 세 살 아이도 아는 것 아니냐’고 하자 스님은 ‘세 살 아이도 아는 것을 팔십 먹은 사람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도’라고 했다는 것.

코로나와 산불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는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지금 세상에 출현해야 할 보살은 상불경(常不輕) 보살”이라며 “산승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어서 애만 태우는 중”이라고 했다. 상불경보살은 모든 이에게서 불성(佛性)을 발견하고 가벼이 대하지 않은 보살이다. 스님은 “서로 잘났다고 각을 세우지 말고 공덕의 숲을 가꿔야 한다. 지도자들이 소리 나지 않는 총을 쏴대는 것을 멈춰야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성파 스님의 은사는 역시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月下) 스님. 그는 “우리 스님은 항상 평상심이 도(道)라 하셨다. 그 말씀은 상식이 도라는 뜻이다. 평생 그 교훈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통도사(양산)=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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