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아프리카서 봉사할 땐 아픈 줄도 몰랐어요”

최만섭 2022. 2. 5. 10:46

“아프리카서 봉사할 땐 아픈 줄도 몰랐어요”

25년간 활동 김혜심 원불교 교무

입력 2022.02.05 03:00
 
 
 
 
 
원불교 김혜심 교무가 2017년 한 에이즈 환자를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양종훈 교수 제공

남아공과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에서 1995년부터 25년간 에이즈 환자, 어린이, 여성을 돌봐온 원불교 김혜심(76) 교무의 활동을 정리한 사진집 ‘블랙 마더 김혜심’이 출간됐다. 사진은 양종훈 상명대 교수가 4차례에 걸쳐 현지를 방문 촬영해 116장을 수록했다.

김 교무는 약사 출신으로 원광대 약학대 학장까지 지낸 성직자. 소록도 근무를 자원해 8년을 보내기도 한 그는 1995년 원불교 아프리카 포교 선발대로 남아공을 방문했다가 처참한 현실을 보고 뿌리내리기로 결심했다. 남아공과 에스와티니에 ‘원광센터’를 설립해 유치원과 태권도, 사물놀이 교실 등을 열어 현지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성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열어 컴퓨터, 봉제 기술 등을 익혀 자립하도록 도왔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엔 중증 에이즈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위로하고 필요한 물품 등을 지원했다. 사진집에는 김 교무가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모습, 어린이들과 어울려 축구하는 모습 등 희로애락이 담겼다. 에이즈로 사망한 13세 소녀를 매장하는 묘지 옆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사진은 고통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의 숭고함을 웅변하는 작품.

김 교무의 헌신은 남수단 톤즈에서 한센병 환자와 어린이들을 돌보다 선종(善終)한 이태석(1962~2010) 신부를 떠올리게 한다. 의사 출신인 이 신부가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났듯이 약사 출신인 김 교무도 건강검진을 제때 받지 못해 갑상선암과 위암 수술을 받았다. 김 교무는 다행히 수술 후 경과가 좋다고 한다.

 

양 교수는 2005년 한 NGO의 제안으로 남아공을 방문해 에이즈 환자의 실태를 취재하며 김 교무와 인연을 맺었다. 거리낌 없이 환자들을 어루만지며 돌보는 김 교무를 만나 2017년까지 4차례 현지를 방문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양 교수는 김 교무의 헌신에, 김 교무는 에이즈 환자 시신 안치소까지 찾아가 에이즈의 비극을 사진에 담아내는 양 교수의 프로 정신에 감동했다. 그러나 사진집 발간에 대해 김 교무는 단호히 사양했다. “더 급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사진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코로나 때문이었다. 2018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1년에 몇 달씩은 현지에 머물던 김 교무는 2020년 3월 귀국한 뒤로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발이 묶였고, 2년이 지났다. 그러자 김 교무는 “후원자들에게 우리 활동을 보고하는 의미로 사진집을 내자”고 출간을 허락했다. 현재 전북 익산 원불교 수도원에 머물고 있는 김 교무는 통화에서 “아프리카에서 일이 바쁠 땐 아픈 줄도 모르는데, 한국에 오면 자꾸 병원 다닐 일이 생긴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전화로 현지 후배 교무님들과 통화하고 있다. 빨리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