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고독한 직업 CEO… 힘들 때면 울돌목, 그 사납게 우짖던 소리를 떠올린다

최만섭 2022. 3. 19. 11:05

고독한 직업 CEO… 힘들 때면 울돌목, 그 사납게 우짖던 소리를 떠올린다

[아무튼, 주말]
충무공 어머니 책도 출간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입력 2022.03.19 03:00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선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그는 “이순신을 만든 것은 어머니 초계 변씨의 교육과 노력 덕분이었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화장품·제약업이 주력인 한국콜마 직원들은 신입 사원 교육 때부터 이순신 얘기를 귀 따갑게 듣는다. 이순신 강의만 6시간 듣고, ‘이순신 평전’(이민웅 교수) 독후감도 쓴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잠시 중단했지만 교육 후반엔 충무공이 한산대첩을 지휘한 통영 한산도의 제승당에 내려가 신고식을 갖는다.

이런 문화를 만든 사람은 ‘이순신 마니아’ 윤동한(75) 한국콜마 회장이다. 윤 회장은 2017년 충무공 호를 딴 ‘서울여해(汝諧)재단’을 만들고, 산하에 이순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중견 직장인을 대상으로 이순신 리더십을 교육한다. 주 1회, 8주 코스로 12기 강의가 진행 중이다.

재단 이사장인 윤 회장도 마지막 날 ‘이순신의 생애와 리더십’ 주제로 강의한다. 충무공 관련 책과 기록을 섭렵하고, 전적지를 샅샅이 답사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인 시각으로 이순신을 연구하면서 책도 두 권이나 냈다. 3년 전 쓴 이순신의 멘토 ‘80세 현역 정걸 장군’과 지난달 말 출간한 충무공 어머니인 초계 변씨를 다룬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이상 가디언)다.

서울 서초동 한국콜마 계열사인 콜마비앤에이치 서울사무소에서 윤 회장을 만났다. 여해재단이 입주한 곳이다.

◇'나라의 치욕 떨치고 오라’

윤 회장은 초계 변(卞)씨 얘기부터 꺼냈다.

“‘난중일기’(1594년 1월 12일)엔 삼도수군통제사인 충무공이 어머니를 찾아왔다가 작별 인사를 하자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가 조금도 이별하는 걸 탄식하지 않았다고도 썼다. 그때 변씨 나이가 여든이다. 충무공을 만든 정신적 원천은 어머니였다.”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

“’난중일기’에 기록된 650일 중 어머니를 사모하며 쓴 게 110일이 넘는다. 어머니 생신인 음력 5월 4일 전후엔 전쟁 중이라 직접 잔을 올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거나 대신 사람을 보내 문안하고 소식을 듣는 게 꼭 나온다.’

윤 회장은 “몰락한 이순신 집안을 한양에서 친정이 있는 아산으로 옮기고, 보성 군수를 지낸 무장 방진 딸을 며느리로 맞아 이순신의 무과 급제를 기획한 인물이 어머니 변씨”라고 했다. 변씨는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 5월 충청도 아산에서 이순신 임지 근처인 여수로 내려와 4년간 지냈다. 고령의 타향살이였지만 아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복귀하자마자 거둔 ‘명량대첩’(1597년 9월16일)도 어머니 도움이 컸다고 썼다.

“‘명량대첩’은 늘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13척 남은 배로 왜선 133척을 쳐부수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얻은 정신적 에너지가 이순신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변씨는 그해 4월 투옥된 아들을 만나겠다며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올라오다 법성포 앞바다에서 엿새간 표류한 끝에 숨졌다. 주위에서 말렸지만 ‘내 관을 짜서 배에 실으라. 죽어서라도 아들을 만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여든셋 고령에 병든 몸이었다. 이순신은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고 난중일기에 썼다.”

◇이순신 본받으면 기업도 성공하겠다 싶어

-기업인이 왜 이순신에 관심을 갖는가.

“직장 생활(대웅제약 부사장) 잘하다가 1990년 창업한다고 하니까 다들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까지 걱정해줬으니까. 창업하면서 내 모델이 있어야겠기에 책을 읽다가 이순신을 만나게 됐다. 뛰어난 경영자이고 위대한 인격이었다. 늘 남들이 안 하는 짓을 골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병마절도사로 가면 육지에서 생활할 수 있고,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수군절도사를 고집했다. 순수하게 한 길로 간 그를 따라가면 기업도 성공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재단 만들고 ‘이순신 학교’까지 할 것까지 있나.

“기업인은 우리 사회의 침묵하는 다수라고 생각한다. 퇴계, 율곡, 다산 같은 학자들도 있지만 좀 어렵다. 이순신은 어렵지 않고 매력적이다. 기업체 중간 간부들을 상대로 이순신의 삶을 얘기하면 다들 달라진다. 마지막에 1박 2일 전적지 답사를 간다. 순천 왜성처럼 보통 관광객이 잘 안 가는 곳이다. 그런데 졸업생 중에 식구나 지인들을 데리고 이런 전적지를 다시 찾기도 한다.”

 

윤 회장은 ‘명량해전’이 벌어진 울돌목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했다.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 해협인 울돌목은 우리 나라에서 물살이 제일 빠른 곳으로 소문났다. 그는 “시속 30노트로 가는 해군 초계정이 비틀비틀하면서 겨우 건너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음력 열나흘이나 열엿새 밤 11시쯤 가면 사나운 짐승들이 우짖는 소리처럼 들린다. 교향곡 같기도 하고 무시무시하다. 이런 바다에서 이순신이 버티면서 왜선을 막아냈다. 훈련이 잘 돼 있고, 부하들이 이순신을 믿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충무공도 왜군을 물리친 게 천행(天幸)이라고 할 만큼 힘든 싸움이었다.”

◇'反日몰이’소동, 수준 이하 짓거리

-2019년 8월 직원조회에서 정부의 반일(反日)몰이를 비판하는 보수 유튜버 영상을 틀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좀 과격한 언사가 포함돼있지만 이런 의견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틀었다. 문제제기한 직원도 조회시간에 정치적인 영상을 틀어준 건 좀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정도였는데 일리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당이 휴일에 성명까지 내면서 공격했다. 세무조사 당하고 회사를 못살게 굴게 뻔하니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일본 지분이 12%이니까 친일(親日) 기업이라고 비난하거나 ‘여성 비하’로 몰고간 건 수준 이하의 짓거리였다.”

-전장(戰場)의 장수처럼 외로울 때가 있나.

“그때마다 이순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한다. 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애민과 충효, 한 길만 우직하게 갔다.”

-박정희 정부가 이순신을 영웅으로 떠받들어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구한말과 일제 때처럼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이 이순신을 불러냈다. 1960년 노산 이은상이 ‘충무공전서’를 국역하면서 이순신 추모운동을 벌였다. 국민학교 때 통영에 충무공 동상 세우는 데 보태기 위해 보리 이삭 주우러 다닌 기억이 난다. 민간에서 벌인 운동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국민들이 사표로 삼을 만한 분이니까 충무공을 받든 것이다. 박정희가 했으니까 싫다는 건 소아병적이다.”

◇”책 많이 읽는 직원, 일도 잘한다”

-한국콜마 직원들은 신입 사원부터 CEO 까지 1년에 최소 책 6권을 읽고 독후감을 낸다고 들었다.

“독후감을 안 내면 승진 못 한다. 잘 쓰면 특진을 시켜준다. 어떤 책을 읽으라고 지정하지 않는다. 좋은 일을 약간 강요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책 많이 읽는 직원이 일도 잘하나.

“그렇다. 책을 읽으면 생각이 정리된다. 자기 일도 정리해서 하는 습관을 기르면 성과가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는 능력도 키우고. 몇 년 전 CJ에서 제약회사를 인수했는데, 거기 직원들이 독후감 쓰는 게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한국콜마는 사업장 11곳에 사내 도서관인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책을 빌려준다.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이용할 수 있다. 이 회사 김지희 상무대우는 “지금까지 등록된 독서감상문(7만6448건)을 읽은 책 두께로 얼추 계산하면 백두산 높이에 가까운 2293m”라고 했다.

◇국내 첫 ‘이순신학과’ 개설 이끌어

-어쩌다 책 읽기에 몰두하게 됐나.

“아버지가 대입 시험 40일 전에 돌아가셨다. 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서울대 상대에 시험을 봤다가 낙방했다. 농협에 들어갔는데 우수 사원을 인도의 협동조합 대학에 유학 보내는 제도가 있었다. 시험은 내가 1등이었는데, 유학은 명문대 나온 친구가 갔다. 기업체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옮겨서 열심히 일했다. 밤에는 관심 있는 역사책을 읽었다. 책만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창업 후엔 기업인들이 돈 버는 데만 관심 있고, 머리에 든 게 없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읽었다.”

윤 회장은 올봄 대구가톨릭대에 국내 첫 이순신학과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석박사통합과정이다. 여기서 배출한 연구자들로 ‘이순신학회’를 꾸릴 계획도 있다. 여해재단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대준다. 경영학 박사 학위가 있는 데다 이 학교 석좌 교수인 윤 회장도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이순신 박사 학위를 따서 제대로 된 전문가가 되고 싶다.” 2조원 대 매출에 직원 3400명을 거느린 기업인의 별난 꿈이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