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뉴스

[특파원 리포트] 美 대통령은 제왕 아니다

최만섭 2022. 2. 22. 04:53

[특파원 리포트] 美 대통령은 제왕 아니다

입력 2022.02.22 03:00
 
 
 
 
 
백악관에서 업무를 보고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UPI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권한을 흔히 ‘제왕(帝王)의 권력’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만큼 권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대통령도 드물 것이다. 임기 초부터 정권 대표 법안·정책들이 입법·사법부 곳곳에서 가로막혀 힘을 못 쓴다. 그중 특히 뼈아픈 이슈가 ‘학자금 대출 탕감’ 공약이란 얘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지지층들이 “이런 것마저 못 하면서 정권 왜 잡았느냐”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때 ‘1인당 1만달러’ 연방 정부 학자금 대출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공약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계층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이란 비판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중도 성향 바이든의 약한 고리인 ‘2030′ 유권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대선 결과 ‘고학력 젊은 층’의 바이든 지지 현상이 뚜렷했다.

미 정가는 그가 ‘행정명령’을 통해 임기 초 이 공약을 처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1년 넘게 무소식이었다. 그는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학자금 탕감 공약을 이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당내 강성파들은 연일 “대통령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지지층을 겨냥한 각종 ‘돈 퍼주기’ 정책을 정권 운영 수단으로 삼아온 한국 집권 세력으로선 바이든 대통령을 이해하기 힘들 듯싶다.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작년 11월 말 문재인 정부는 학자금 대출 연체자에 대해 원금의 최대 30%를 탕감해주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청년들을 돕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한 달 만에 나왔다. 대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대규모 ‘빚 탕감’을 대통령 단독으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결론 내린 듯하다. 의회 입법 없이는 밀어붙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참모들이 법적 검토를 거친 결과라고 한다. 앞서 백신 의무화에 대해 사법부는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 행사’라며 제동을 걸었다. 수천조 원 규모의 사회 복지 법안 등은 의회에서 막혀 있다. 미 진보 언론들도 “바이든은 미국인들이 ‘큰 정부’를 바란다고 판단한 것 같지만 실제는 현실과 다르다”고 했다. 개별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행정부에 대한 견제만큼은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취지다.

우리는 어떤가.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업무 지시’로 국정 교과서 폐기, 4대강 감사 등을 밀어붙였다. 대통령 권한 밖이란 지적도 나왔지만 아랑곳없었다. 공소시효까지 무시하라며 수사 지시를 내렸다. 그런 5년간 입법·사법부는 어떤 견제도 하지 못했다. 다음 정권은 국회, 사법부, 정부 부처 모두가 정권의 ‘거수기’ ‘시녀’로 전락한 비정상적 구조를 깨부수는 것을 1순위로 삼아야 한다.